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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153뉴스 tv 2007. 1. 18. 21:32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1996년도 서울대 인문계 수석(首席)을 차지한 장승수(26세)씨가 펴낸 책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가 화제를 모았었다.


놀라운 것은 대입 5수(五受) 끝에 일구어낸 합격의 감격이 너무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대입 수험공부’는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렵고, 지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수험생 당사자는 물론 온 가족이 함께 겪어야 하는 극심한 홍역과도 같은 무거운 짐이다.

더구나 낙방과 좌절을 거듭해야 했던 당사자로서는 더없이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힘든 대입 5수의 긴 터널을 지난 뒤에 토해 낸 말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이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한다.


그는 고등학교 성적이 별로 신통치 않았고, 가정형편도 여의치 않았다고 했다.

대입의 꿈은 아예 포기하고, ‘포크레인’ 기사가 되려 했으나, 그것도 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홀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해야 한다는 장남으로서의 의무감 때문에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했다.

신문배달, 오락실 종업원, 물수건 배달, 가스 배달, 택시기사, 토목공사장 막노동에 이르기까지 발 벗고 뛰어들어 젊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거의 다 거쳤다고 할 만큼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키 160Cm에 몸무게 52Kg의 작은 체구가 겪어야 했던 고생이 얼마나 컸었던가를 짐작케 한다.

그러기에 그의 말은 그냥 넘겨버릴 말이 아닌 것 같다.


공부가 하기 싫었던 그는 TV매체를 통해서 보여지는 퇴폐적인 모습들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어머니를 감쪽같이 속이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과 담배를 즐겼다.

오토바이를 타며 질주하는 것도 통쾌한 일이었다.  그토록 자유분방했던 그가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가 말하는 새로운 인생에의 전환은 너무나 간단한 동기에서 비롯된다.

‘K대학교’에 다니는 동생의 등록금을 납부하기 위해 들렀던 대학교 캠퍼스의 풍경이 너무도 인상 깊었다.

고등학교까지의 학교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새로운 세계, 꿈의 동산으로 보여 졌다.

평온하면서도 어딘가 활기가 넘치는 것 같은 젊은이들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졌다. 그것은 비탄과 절망이 아니었다. ‘나도 공부해야겠다.’는 각성이었다.

그리고 불같은 욕망이 치솟았다. 그는 굳게 결심을 하고 ‘입시학원’을 찾았다. 이제 친구도 술도 담배도 그에게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지금까지의 무의미한 생활 속에서 하루 빨리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심도 어렵지만, 실행은 더 더욱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21세의 청년 그는 참으로 놀라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왠지 공부가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 ‘국사가 만화보다 재미있었고, 수학이 당구보다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학원에서는 주위 동료들이 그를 ‘말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정도로 말없이 조용하게 지냈다.

오직 실력 향상에만 몰두했다. 매월 치르는 모의고사에서 점점 향상되어 가는 성적에 더욱 흥이 났다.

 

누가 보더라도 ‘서울대는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만한 자신의 불리한 조건 앞에 과감히 도전하고 나섰다. 

그의 집념은 실로 대단했다. 그래서 네 번이나 낙방하면서도 결단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전진했다.

누가 다섯 번째를 보장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그는 마침내 ‘극적인 인생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참으로 ‘자존심이 강한 자’였다. 


그의 성공 사례는 이미 수많은 수험생들에게 귀감이 되었었다.

한 때의 방황과 자포자기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교훈이 아닐 수 없다.

혹자들은 이런 사례를 들추면서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자녀나, 자기가 지도하고 있는 학생들을 다그칠 경우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가 털어놓은 솔직한 말에 진정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을 여의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 가정교육을 중시하여 늘 엄격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공부를 멀리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비행을 저질렀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행동했다.

그 ‘신뢰’와 ‘기만’ 사이에서 남은 것은 ‘대입 포기’였다.  자녀의 행동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부모나, 그 부모를 속이기 위해 갖은 꾀를 짜내는 자녀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이 얻는 것은 결국 ‘허탈함’ 그것일 뿐이다.


과거의 잘못된 생활을 절실히 뉘우치고, 새 삶을 찾게 되는 데는 ‘어머니의 성화’도  ‘교사의 조언’도 ‘친구의 충고’도 아니었다.

‘자기 스스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다짐’했던 것이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각고의 노력과 무서울 만큼의 인내가 엮어낸 성과인 것이다.

세상에 ‘집념’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마치 시범이라도 보인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훌륭함이 돋보이는 것이고, 주어진 사회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의 변화된 삶이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 번 작심하고 학원에 다니면서부터 친구들과는 절대로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를 하다가 쉴 때에는 언제나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행여 ‘유혹에 휩쓸릴까’하는 염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공부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되는 일은 아예 접촉을 피했다.

어쩌면 이 일이 그의 삶 속에서는 막노동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정도의 결심이 없는 자에게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공부를 시키려 회유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의 성공의 비결은 ‘단호한 결단력의 결과’인 것이다.

끝내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도 ‘하고 싶은 공부를 평생하고 싶다.’고 말한 그는 ‘공부’란 단지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나 의무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그의 모범적 극기 정신은 아무나 쉽게 본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또 ‘결과만 가지고 너무 치켜세우지 말라’고 말한다. 

사실 따져놓고 보면 ‘남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이루는 일을 자신은 무려 5년이나 걸려서 간신히 이룩한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겸손이 아니다. 뼈저린 ‘후회의 고백’인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조금만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그리고 남들과 같이 대학에 입학하여 5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었더라면, 지금은 이미 어떤 한 분야에서 남다른 성공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공부가 자기의 ‘적성(適性)에 맞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토록 하기 싫었던 공부가 ‘적성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데는 학창생활에서가 아니라,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스스로 얻어 낸 결론인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입시 위주의 중압감 속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던 소중한 발견인 것이다.

‘자기의 적성(適性)을 찾아 그 일에 매진(邁進)한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 동 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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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로는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였고. 몇 권의 책을 출판하기도 하며 여러 기관에 강사로 활약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대는 무엇을 꿈꾸는가?]

 

출처 : 하얀능금
글쓴이 : 하얀능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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