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비단잉어 코이(koi)는 작은 수족관에 두면 8센티까지 자라고, 연못에 두면 25센티까지 자라고, 강에 두면 120센티까지 자랍니다.
언제나 희망은 있습니다.
희망은 자랍니다.
희망을 가지고 나가면 몸은 죽어도 영향력은 죽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희망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희망의 근거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what I have)?”가 아닙니다.
능력, 물질, 성공은 얼마 후에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희망의 근거는 “내가 누구인가(who I am)?”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사람입니다.
세상이 우연히 생겼다고 믿으면 희망의 근거는 ‘우연’이지만 하나님의 창조를 믿으면 희망의 근거는 ‘하나님’입니다.
‘희망하는 것(hoping)’은 ‘바라는 것(wishing)’이 아닙니다.
진짜 희망은 ‘바라는 것’을 버릴 때 생깁니다.
‘바라는 것’은 내 생각의 테두리 안에서 우연을 믿고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이지만 ‘희망하는 것’은 내 생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에 나를 여는 것입니다.
바램은 ‘허무한 환상’에 기초를 두지만 희망은 ‘위대한 실체’에 기초를 둡니다.
고난은 ‘희망하는 것(hoping)’과 ‘바라는 것(wishing)’을 분별하는 도구입니다.
‘바라는 자’에게 고난은 기득권의 상실이지만 ‘희망하는 자’에게 고난은 산고의 진통입니다.
‘희망하는 자’에게 주어진 고난 체험은 오히려 희망 체험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브리서 11장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