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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킨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서종표 목사를 만나 군산 3·5 만세운동의 역사적 사실 등에 대해 들어보자

153뉴스 tv 2022. 3. 8. 11:20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독립만세가 울려 퍼진 곳은 바로 군산이다.

호남 최초 만세운동인 군산의 3.5 만세시위는 전라북도 곳곳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의 통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영명학교의 교사들과 학생들이 기도하며 계획한 것이다.

3·5 만세운동의 주역인 교장 윌리엄 린튼 선교사와 이두열·고석주·김수남 교사 등 4명이 ‘3월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산 3·5 만세운동은 당시 3만7천여 명이 참여했고, 이후 전북 곳곳에서 28회에 걸쳐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된 촉매제 역할을 했다.

1917년에 군산청년야학이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민족교육을 위한 많은 학교들이 설립된 가운데 이중 하나가 미국 남장로교 계열의 영명학교와 멜볼딘 여학교였다.

(사)전킨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서종표 목사를 만나 군산 3·5 만세운동의 역사적 사실 등에 대해 들어본다.

서 목사는 “3.5만세운동 103주년을 맞이해서 103년 전 무저항으로 일본의 포악한 총칼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우리 군산의 선열들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라며 “그분들의 애국 애족의 마음과 피 흘려 외치며 지켜야 했던 우리의 소중한 조국을 그리고 우리 군산을, 우리도 선열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나라를 물려줘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 목사는 “무엇보다 더욱 물려주어야 할 것이 있다. 그분들이 믿었던 복음에 대한 믿음을, 그리고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믿음을 물려줘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또, “여기서 우리가 꼭 다시 되돌아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127년 전 군산은 70여 가구가 듬성듬성 펼쳐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이곳 군산인들이 그 후 25년이 지나 나라도 일본제국주의를 막지 못해 망했는데 무자비한 일본의 총칼 앞에 무저항으로 태극기를 휘날리고 길거리에 피를 뿌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게 될 수 있게 된 그 배후에 대해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민족적 무저항 정신의 근본은 바로 27년 전 전킨선교사와 드루선교사 이 두 선교사가 군산 수덕산에 초가집 두 채를 마련하고 기독교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데서 시작됐다. 전킨선교사와 드루선교사는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다.

“군산예수병원을 세워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냈다. 영명학교와 멜볼딘여학교를 세워 세계적인 학식과 문물을 가르쳐 주었다.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자유와 평등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였다. 한글을 가르쳐 문맹의 눈을 뜨게 하고 여인들에게 가정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머슴들에게 인권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다. 일본의 악랄한 수탈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망해가는 나라를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서 목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들의 신앙과 교육 등은 많은 애국의 젊은이들이 모여들게 했고, 애국지사들이 학교 교사로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 나갈 길과 애국의 신념을 심어줬다.

서 목사는 “군산, 익산 그리고 호남 여러 곳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의 주역들은 대부분 영명학교와 멜볼딘학교 출신들이고 기독교인들이었다”며 “만일 영명학교와 멜본딘 학교 그리고 군산예수병원, 구암교회와 개복교회가 없었다면 군산에서 3.5만세운동과 그 후 일어난 옥구농민항쟁운동들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고 토로했다.

3.5만세운동 103주년을 맞이했다. 젊은 시절에 선교사들은 아주 작은 어촌 군산지역의 초가집에서 불편함을 감소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근대화의 물결을 전해주었고, 애국의 정신을 일깨워준 전킨 선교사와 드루선교사의 행적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특히 전킨선교사와 드루선교사가 전해준 그 복음에 대한 분명한 자유에 대한 믿음 특히 출애굽 신앙이 3.5만세운동의 출발점이 됐다고 고백했다.

임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