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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암교회를 찾아, 순교의 뜻을 가슴에 새겨본다

153뉴스 tv 2020. 1. 10. 13:01
























기성 전주지방회(지방회장 송창빈 목사) 신년기도회에서 지난 3일 준비위원회 위원장 류승동 목사는 정읍 두암교회 순교 70주년 기념사업 발표를 가졌다. 2020년 두암교회 순교 70주년 기념사업을 전해 듣고, 지난 4일 오후 1시에 두암교회를 찾았다.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에 자리하고 있는 두암교회는 처음 찾아가는 길이여서 낯설었으나 23명의 순교자와 순교지 방문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임을 가득안고 방문했다.

두암교회는 순교자 가운데 윤일례 집사가 중심이 돼 시작된 교회이다. 윤 집사는 아들 김은용 전도사의 전도로 교회출석을 시작했으며, 윤 집사를 구심점으로 일제시대에 설립됐다.


두암교회 담임 홍용휘 목사는 두암마을에서 교회에 출석하기 위해서 시오리를 걸어서 교회에 출석했다. 해방이 되면서 성도들은 두암 마을에 교회를 세웠다단촐한 기와집에서 성도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며 신앙을 견지하며 교회출석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이날 홍 목사는 현재 본당과 시비 그리고 종각, 성찬석 등을 리모델링 하고 있다전북지역의 교회와 성도들의 기도와 관심을 부탁한다고 했다.

, 두암교회는 전주지방회 주관으로 기념홀과 까페도 준비하고 있고, 두암교회 순교사 편찬 상징물 제작, 순교기념음악회 등도 함께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홍 목사는 두암교회의 순교정신을 이 시대에 전해 교회를 지켜가며 이 신앙을 다음세대에 전수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두암교회 주변은 공산군과 반공세력 간의 총격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두암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와 그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성도들을 반동으로 몰아 날마다 가택수색을 벌이며 협박을 일삼았다고 전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임동선 전도사를 초청해 부흥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부흥집회를 연 김용은 전도사를 잡기 위해 가족과 성도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방해했다. 하지만 19509월 하순부터 공산주의자들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탄압 과정에서 김용은 전도사의 동생 김용채 집사는 총에 맞아 고부라는 마을로 옮겨 치료하던 중 우익인사들과 함께 희생당했다. 그해 1019일 공산세력은 윤임례 집사와 그 가족 등 두암교회 성도를 몰살시킬 계획으로 몰려왔다.


 끝내 몽둥이와 칼부림 속에 윤집사와 자녀들 그리고 23명의 두암교회 성도들이 순교당했다. 공산 세력들은 교회와 성도들의 집 4채에 모두 불을 지르기도 했다.

홍 목사는 이날 학살로 윤임례 집사와 둘째 아들 김용채 집사, 며느리 조선환 집사 등 일가족이 학살됐다. 정읍농업고등학교 학생회장이던 김용술 학생과 그의 가족, 김용은 전도사의 친구 박호준 등 23명이 학살로 순교를 당했다고 밝혔다.


서명선 목사와 김용례 사모는 공산군이 철수한 후  두암 마을을 방문해 시신을 수습하고 23명의 순교자의 장례를 치루었다.

홍 목사는 윤임례 집사는 죽음에 앞서 기도를 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윤임례 집사의 두 아들인 김용은 목사와 고 김용칠 목사 형제는 본 교단 총회장을 역임했다. 교단 발전에 헌신했고, 서명선 목사를 비롯해 20여명의 목회자가 배출됐다고 덧붙였다.

이후 두암교회는 세월이 흐르면서 1964년 두암 마을 출신인 김태곤 전도사가 자신의 가정에서 주일학교를 시작하면서 재건됐다. 1966년에는 교회를 새로 건축하는 등 가매장됐던 순교자들의 무덤을 교회 동산으로 이장하고 순교자 묘로 합장했다. 또한 순교를 전후로 매년 10월 중순 순교자 합동 추모예배를 드리고 있다.
임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