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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회장 김종술 목사를 만나 ​2019년 전주시부활절연합예배 준비과정 등을 들어봤다

153뉴스 tv 2019. 4. 21. 17:36







전주시 부활절연합예배가 오는 4월 21일 새벽 5시, 전주대 희망홀에서 열린다.

이에 전주시기독교연합회(회장 김종술 목사)가 그동안 2019 부활절 준비기도회 및 특별위원장 위촉식’ 등 갖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

대표회장 김종술 목사를 만나 ​2019년 전주시부활절연합예배 준비과정 등을 들어봤다.


​전주시기독교연합회는 부화절 연합예배를 위해 부활절 준비위원장에 시온성교회 담임 황세형 목사를 위촉하고, 교단협력위원장, 이단대책위원장 등 28개 특별위원장을 위촉하는 등 성공적 전주시부활절연합예배를 위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특히 1,300개 교회의 동참, 1004명 연합 찬양대 조직, 재정마련 등을 위해 특별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무엇보다 이번 부활절연합예배 특징은 천사찬양대가 나서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 전주시기독교연합회가 부활절연합예배를 앞두고 준비하고 있는 것은?

“이번에는 전주대학교 희망홀에서 오전 5시에 드린다. 주제가 ‘부활의 기쁨을 온누리에’로 정했다. 확대임원회의에서 결의했다. 이번 주제를 ‘부활의 기쁨을 온누리에’로 정한 이유가 있다. 사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이다. 미국 청교도들의 신앙을 살펴볼 때, 믿음과 소망 사랑은 기본이다. 또 자녀들에게 창조성과 지혜 그리고 즐거움(쾌활함)을 교육한다. 여기에다 선행까지 가르친다. 반면 한국교회 성도들은 우울질이 다소 많이 잠재해 있다. 예수님게서도 말씀 하셨다.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기쁨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활절을 맞이해 기쁨이 회복되고, 이 기쁨을 온누리에 나눠야 하며 전파해야 한다.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얻었다. 세상에서 제일 기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영생을 얻는 것이다.”


-. 이 시대에 부활절하면 떠오는 것과 추억이 있다면?

“미국 등 기독교 문화가 뿌리 내린 나라와 대한민국과는 차이점이 있다. 선진국들은 부활에 휴가와 축제가 있다. 반면 한국교회는 그렇지 않다. 고난주간을 거쳐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리면 이것으로 끝낸다. 여기에다 세미나 등을 추가하는 정도이다. 안타깝다. 부활절기에 문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부활주일부터 50일, 즉 오순절까지 기쁨의 날로 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전통적인 부활절문화이다. 한국은 찾아볼 수가 없다. 부활절 문화가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 이번 부활절 준비 특징은?

“주제가 ‘부활의 기쁨을 온누리에’이다. 이 주제에 따라 기쁨의 찬양을 부르기를 소망하기에 천사찬양대(1004명)로 명칭을 부르기로 했다. 1004명이 합창에 나선다. 전주시내 10여 교회가 나서 1004명의 연합찬양대를 구성한다.”


-. 평소 주창하셨던 청교도 신앙에 대한 지론은?

“전주시기독교연합회가 설립된지 50주년이 됐다. 연합회 목적은 부활절 행사 뿐만 아니라 교제가 중요하다. 연합회는 교회와 교회 목회자와 목회자, 성도와 성도들 간의 교제가 중요하다. 초대교회의 사도행전교회 회복이 중요하다. 이 초대교회도 교제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도 교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전에는 임원들 간 회의를 가졌다. 이번에는 확대회의 즉 증경회장 등도 초청해 확대회의를 가져 교제의 시간도 가지고 있다. 올해 몇차례 모임을 가졌다. 반응이 좋다. 임원회를 할 때는 갈등이 약간 도출이 된다. 그러나 확대회의를 가질 때, 반목과 갈들이 사라지고 화목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청교도에서는 4년마다 1회씩 세대회를 가진다. 국가별로는 2년마다 1회씩 행사를 가진다. 특징은 함께 기도하고 떡을 나누는 기본 정신이 강하다. 즉, 가정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긴다. 교회가 잔치집이다. 이것이 청교도 기본 정신이다. 또,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무엇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성도들 간 교제가 소중하다. 청교도 운동의 3대 로그는 신앙과 자유, 교제이다.”


-.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에 대해.

“신앙생활은 영적전쟁이다. 우리는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영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 그러나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은 이 세상의 권력자를 통해 역사하고, 불신 세력들을 통해서도 역사한다. 또, 타 종교와 이단 세력 등을 통해서도 역사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처하는 능력이 약하기만 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항상 들려 주셨던 말씀이 바로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다. 따라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더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다. 이기는 자에게 상 주시겠다고 하셨다. 기드온의 300명 용사처럼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영향력이 온누리에 미치시기를 원한신다. 빛과 누룩의 소명은 퍼져서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현실은 교회문을 닫고, 자신들만의 잔치를 펴쳐가고 있다. 교회 안에서 기도하면 나머지 부분을 해주실 것이라는 생각들이 많다. 이것은 안일한 대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라와 지역도 맡기셨다. 미국이나 영국 등 기독인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한국교회와 목회자들도 이 사회적 책임과 빛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 전주시기독교연합회가 추진하고 있는 사역에 대해.

“전주시기독교연합회에는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이 특별위원회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취지로 조직돼 있다. 먼저 탈북자들을 섬기고 있다. 온고을사랑나눔연합회를 통해 탈북민들을 섬기고 있는데, 이 땅에 정착하도록 돕고 있다. 또, 탈북민들이 남북이 통일 될 때 자신의 고향에서 복음의 메신저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지역의 복음의 구심점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한다. 이들의 자녀들도 한국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한다. 명절 때 이들을 초청해 섬기는 시간도 갖고 있다. 또, 출산장려운동도 더 강화시켜가야 한다. 이와함께 ‘예손사랑나눔’에서 매일 65세 이상 150여명 어르신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있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전통시장활성화운동본부 전주지회에서 온누리상품권과 계란 구매 등을 통해 지역경제 살리기에 앞장 서고 있다.”


-. 전북성시화운동본부 회장으로 섬기고 계신다. 구체적 사역은?

“성시화운동 뿌리는 종교개혁자들에게 의해 출발됐다. ‘거룩한 도시’를 세우자는 것이 모토이다. 거룩하다는 뜻은 도덕성과 윤리, 법제화 등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자라는 출발이 바로 성시화의 시발점이다. 한국의 성시화운동의 취지는 종교개혁자들의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복음화 시켜가자는 것이다. 거룩한 가정과 이 사회를 정화시켜 깨끗한 도시롤 만들어가자는 것, 이것이 성시화운동의 출발점이다. 한국은 긴준곤 목사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복음화운동이다. 부산이 대표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전북은 아직 취약하다. 성시화운동의 또다른 운동은 바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것이다. 동성애등 차별금지법반대와 성평등,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등 한국교회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독소조항에 대해 적극 반대한다. 서울 본부와 부산 등 성시화운동본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 어릴적 신앙생활과 목회 출발점은.

“작은어머니가 이북 출신이다. 이 작은어머니 신앙이 신실하셨다. 저희 가문의 복의 근원이 되셨다. 저도 작은어머니 전도로 교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1972년 월남파병 근무를 마치고 전역을 한 후에 신체검사를 받고, 폐결핵 판정을 받았다. 절망적인 시기였다. 현재 샬롬 수양관 자리를 찾게 됐다. 진안군 주천면에 자리하고 있다. 매일 피를 토해내는 상황이 지속돼가고 있었다. 샬롬수양관에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메달렸다. 살려 수시면 주의 종이 되겠다고 부르짖기 시작했다. 한 꿈을 통해 치유되는 역사가 나타났다. 일단 기분이 좋았다. 기도 제목도 바뀌었다. 고쳐 주시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일평생 증거하겠다는 서원을 했다. 얼마 후에 피가 멈추자, 신학을 시작했다. 그때가 1974년도이다. 45년 됐다. 사실 저는 사랑이나 인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서 목회에 사실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인턴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정읍용산교회를 개척했다.이어 진안에 가장 어려운 교회 담임 전도사로 섬기기 시작했다. 진안 평강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6년 동안 섬겼다. 교회와 사택도 건축했고, 각 처소에서 부흥회를 이끌기도 했다. 이웃교회도 섬기고 80여명의 성도들이 출석했다. 34년 전에는 한국샬롬교회를 개척했다.”

임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