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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은영 집사(전주중앙교회)

153뉴스 tv 2018. 11. 27. 12:12






피아니스트 이은영 집사(전주중앙교회)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희곡 ‘헨리 4세’에 이런 대사를 썼다.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반드시 그 위치와 권한에 걸맞는 자격과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예기다. 리더로서 자격과 책임은 통찰력과 전문성, 경험을 우선시 한다.

특히 남에 대해 멘토란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대, 지도자, 스승을 의미한다. 그런 멘토로부터 가르침, 돌봄을 받는 이를 멘티라고 한다.


“저희 부모님은 항상 저희들에게 기도하며 스스로 결정하기를 존중해 주셨습니다.”
피아니스트 이은영 집사(전주중앙교회)는 자신의 멘토를, 이종열 목사를 첫 번째로 꼽는다. 그는 아버지이며 목회자인 이종렬 원로목사(익산동부교회)를 항상 존경하며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자로 부른다.


“아버지께서 익산동부교회까지 3회에 걸쳐 건축을 하셨습니다. 어릴적부터 집안의 항상 경제 사정이 어려웠지만 아버지는 사심 없이 목회에 전념하신 분입니다. 예전에 섬겼던 교우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지금도 그리워하십니다.”
2남 1녀 가운데 장녀인 이 집사는 아버지는 저희들이 스스로 알아서 장래에 대한 일 등을 결정하도록 하셨다며 아버지를 통해 멘토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고 회고한다.


특히 그는 지천명에 이른 지금의 삶 가운데에서도 항상 꿈을 꾸며 날마다 한걸음씩 도전에 나선다며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통해 삶을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쟁취하도록 은혜를 허락해 주셨다고 고백한다.


이 집사는 취미로 동네의 피아노학원에서 레슨을 받던 중 우연한 기회에 초등학교의 합창단 반주를 시작해 매일 음악과 더불어 사는 삶을 누리게 된다.

“고등학교 때엔 선교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순화시설 및 복지시설 종교기관을 찾아 전국 순회연주를 가졌다”며 음악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이 시기에 고등학교 음악선생의 권유로 전문적으로 음악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대학에서는 선교 합창단 및 교향악단 협연 등 각종 연주회를 쌓는 등 음악의 풍부한 밑거름이 됐다. 졸업 후에는 결혼과 함께 남편이 거주하는 일본으로 유학길에 올라 3년 후에, 2001년 네덜란드로 다시 유학길에 오른다.


그는 네덜란드 유학 도중 교육기관의 학업의 선을 넘어서 다양한 경험을 익히며, 각종 페스티벌에 참가해 음악적 지경을 넓히기도 했다. 솔리스트와 앙상블연주자로서 또한 가곡 반주자로서 크고 작은 음악회에 참여해 연주자로서의 다양한 역량을 쌓는 기회를 가진다.

이 집사는 2005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클래식 연주 역량강화 및 일반인과 클래식 음악을 공유하기 위해 매년 피아노 독주회를 개최한다. 매년 시대적 흐름에 맞는 테마를 가지고 연주한 독주회는 많은 갈채를 받기도 했으며, 또한 시간강사 휴식년에는 여러 나라에서의 국제 콩쿠르에도 도전하여 입상함으로, 스스로를 점검하기 계기도 마련한다.


“저는 전주현대음악제 음악감독으로서 훌륭하지만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훌륭한 클래식 음악을 엄선하여 연주하거나, 훌륭한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엄선하여 연주하도록 기획하였습니다. 또한 더불어 클래식 음악과 잘 정화된 비클래식 음악과의 공존을 택하여 일반인에게 다양한 컨텐츠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점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 전주현대음악제 음악감독으로서 훌륭하지만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훌륭한 클래식 음악을 엄선하여 연주하거나, 훌륭한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엄선해 연주하도록 기획도 했다.


“2010년 이후에 클래식 음악과 잘 정화된 비클래식 음악과의 공존을 택해 일반인에게 다양한 컨텐츠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점도 기억에 남습니다. 국악과의 융합에도 관심을 가져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시립국악단과 연주를 했어요. 이때에 무분별하게 퓨전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보고 전문인으로서 개선점을 느꼈습니다.”
이때 그는 그 해결책으로 전주현대음악제 작품공모를 통해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앙상블 혹은 국악타악기와 피아노의 앙상블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음악감독을 역임하면서 연주자의 자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기획업무와 함께 대외섭외 그리고 공공기관 등과의 관계 능력 등을 키우는 소중한 기회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의 학교를 졸업했지만 끊임없이 노력했고, 하나님 은혜로 네덜란드에서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귀국 후에도 시간강사와 다양한 독주회, 협연, 음악감독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집사는 항상 “언젠가는 이뤄지겠지”라는 매일 꿈을 꾼다. 때로는 그도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집사는 자신을 책찍질하며 한걸음씩 도전에 나선다. 그는 “하나님 축복으로 배운 음악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전하고 싶다. 제 연주를 통해 사람들이 위안 받기를 원하며 학생들에게는 음악적 기본 교양의 바탕을 튼튼하게 해주며, 학생들이 연주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회와 비전을 전수하며, 사회가 필요로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음악인이 되는 길에 길잡이가 되고 싶다는소망을 전했다.
임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