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양성을 통한 세계 선교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제자양육을 통해 열방을 향해 예수님의 ‘최후의 지상 명령’인 복음 사역을 정진하고 있는 임종학 목사(전주제언교회). 그는 마태복음 28장에 나오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제자 양성사역을 견지해왔다. 믿음의 선진들이 이 말씀에 순종해 수많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 구원 역사를 이룬 것처럼 그는 지난 40년을 한결같이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아왔다.
“삶을 통해 본을 보이는 모습이 가장 바람직한 목회입니다”라고 강조하는 임종학 목사의 삶과 신앙을 들어본다.
-. 목사님께서 그간 실천해 온 ‘목회’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목회는 섬기는 리더쉽입니다. 삶을 통해 본을 보이는 모습이 가장 바람직한 목회입니다. 목회자의 영향력 80%가 목회를 좌우합니다. 따라서 성숙한 목회자의 인격이 필요합니다. 권위는 필요하지만 권위주의는 배격돼야 합니다. 또 목회는 선교입니다. 나는 제자양육을 통해 선교의 의지를 다져왔습니다.”
-. 제자양육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재언교회를 해석하면 ‘재’는 있을 ‘재’이며, ‘언’은 말씀 ‘언’입니다. 즉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교회 초기부터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며 주님의 제자들로 성장시켰습니다. 교회성장과 함께 제자들을 인격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선교’라는 의미는 해외로 파송돼 나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신의 삶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아벨의 제사처럼 가정과 이 사회에서 삶을 통한 사역을 펼쳐가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추구해온 목양의 선교적 마인드입니다.”
-. 인재를 양성하며 목회 현장에서 사역을 펼쳐오셨는데, 기억에 남은 사역은.
“ESF 사역에서 배출된 제자들(목회자 100여명, 사모 200여명)이 대한민국과 열방에서 복음의 구령을 외치며 그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20년간 1,000여명의 제자들 가운데 특별히 목회 현장에서 또다른 제자들을 양육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재언교회에서도 10여명이 목회현장에서 성도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김평중 장로님 부부가 정신지체 장애학교 베다니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부르심 받는 그날까지 제자양육에 전심을 다할 것입니다.”
-. 전북개혁신학교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013년부터 학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신학교입니다. 점차적으로 학사 강화를 통한 질적인 교육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수업부터 견실하게 다져가고 있습니다. 월,화, 목, 금 등 매주 4일 동안 3년 과정입니다. 평생교육원을 설립해 다문화가족과 탈북민들을 교육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학력인정 기관을 설립 계획입니다. 특화교육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 교회 출석은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진안이 고향이며,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유교를 숭배하는 부모님의 받고 성장했습니다. 특히 유교의 영향 아래 아버지께서는 엄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던 어느날 영생고에서 복음을 듣게 됐고, 전북대 1학년 때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또 ESF 선교단체서 대표 간사님을 통해 제자 양육을 받았습니다. 하계 방학 때는 시골에 소재한 교회를 찾아 나누며 섬기는 사역과 설교도 병행했습니다.”
-. 신흥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목회에 대한 배경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전북대를 졸업 후에 신흥중학교 수학 교사로 1972년 3월에 발령받았습니다. 대체적으로 처음에는 시골학교에서 교사를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사립과 공립의 선택에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순위고사에 따라 공립학교에서 근무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기로 결정하고, 사립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졸업식 후에 기념사진 촬영 가운데 신흥중학교에 채용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적적으로 특채됐습니다. 그당시 섬겼던 교회는 중부교회이며 김동건 목사님의 신앙지도를 받았습니다.”
-. 교직에 근무하면서 ESF 대표간사로 헌신하셨다는데요.
“대표 간사님께서 발령을 받아 서울 본부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나에게 간사로 근무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파트타임 간사로 근무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대표 간사로 81년부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80년 초반은 대학생 2-3명만 모여도 집시법 위반으로 경찰서에 붙잡혀 가서 곤욕을 치루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아내인 양영자 사모와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대학생 사역에 전념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부모님의 자랑이며 소망인 저희 두 부부가 한순간에 사표를 제출했으니, 부모님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저희들에게는 축복의 통로가 됐습니다. 제정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음을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30년 전 부모님의 인삼재배 사업이 잘돼 3,000만원의 수입창출과 IMF 시절 용담댐 건설에 따른 부지 보상으로 6억원의 보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고도 신기한 일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 교회개척은 언제하셨는지요.
“86년 5월 10일에 모래네시장에서 교회설립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교회가 점차적으로 부흥이 이루어지자 2002년 ESF 대표간사를 사임했습니다. ESF 금요채플에는 200여명 이상이 모이는 부흥도 경험했습니다. 군산, 광주, 부산, 인천 남원 등 지역별 지회도 확장돼 갔습니다. 교회 성도도 12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전담사역을 위해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 저는 ESF 간사직을 내려놓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홀한 추억이었습니다.”
-. 끝으로 목사님의 가정 자랑을 부탁드립니다.
“나는 전북대(수학과)를 졸업하고, 개신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군장대학교 겸임교수와 개신대학교에서 7년간 교수로 섬겼습니다. 장남 임일송 목사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석사와 목회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뉴욕 백민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차남 임일수 집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현재는 대검 국제부 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막내 임새롬이 집사는 세종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남과 차남의 아내가 교대 출신입니다. 사위는 환경부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자녀들 모두 자신들의 처소에서 모두 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내 양영자 사모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임채영 기자
'FANTV > 교회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 봉동읍사무소 1층에 자리한 다문화이주여성들의 안식처가 된 북카페 ‘보물섬’, 대표 이병윤 목사, 김종례 사모를 만났다. (0) | 2015.02.28 |
---|---|
김제구암교회 담임 박영배 목사가 ‘1189로 떠나는 성경여행’을 출간했다 (0) | 2015.02.28 |
만나봅시다/노아선교단 군산지부 대표 한동현 집사(군산삼학성결교회) (0) | 2015.02.05 |
초대석/모악제일교회 안양욱 목사 (0) | 2015.02.05 |
인터뷰/하리성결교회 민경휘 목사 (0) | 2015.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