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나를 부르셨으니, 내 모든 정성 내 모든 정성 주만 위해 바칩니다.”
20대에 주치의도 포기한 중병을 앓았던 이형렬 목사.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받고 주의 종이 됐다. 그는 당시 성령의 능력을 직접 체험했다. 놀랍고도 기적에 가까운 일을 스스로 체험한 이 목사는 지금까지 신실한 목회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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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중병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던 그가 전도를 받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2개월쯤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다져가던 그가 ‘모든 약을 버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곧바로 순종한다 .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다가오셨다.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의로운 태양이 떠 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는 말씀이 육신이 돼 그에게 찾아오셨다.
대전침례신학교에 입학한 이형렬 목사는 신학교 3학년 시절. 지난 88년도에 충남 보령군에 소재한 광산촌 청나마을에서 청나중앙교회를 개척했다. 27년전의 일이다. 그는 이곳에서 예배당을 건축하고 4년만에 교회를 사임하고 대천시에서 산성침례교회를 또다시 개척하게 된다.
“청나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3번의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다짐도 스스로 했습니다.”
병든 침상에서 ‘왜(?) 하나님께서 부르셨을까’라는 물음표 앞에서 그는 교회개척의 사명을 깨닫게 된다. 이형렬 목사는 신실하게 그 서원을 이어갔다. 교회개척과 함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최선의 가치였으며, 전략이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역이었다. 이후에 그는 무주 구천동에서 구천중앙교회를 개척하고 건축에 이르게 된다.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벧엘에서 만난 야곱의 서원을 본받아 이형렬 목사는 신실하게 지켜냈다.
“이제는 선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 99년도에 군산에서 4번째 에이스중앙교회를 개척한 이형렬 목사는 선교마인드와 함께 지역사회 섬기는 일에 비중을 두고 다져가고 있다. 그는 군산시성시화운동본부 대표 본부장, 전북기독교연합회 총무, 군산교도소 교정위원, 호남·제주침례교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복음화와 지역사회 섬기는데도 일조하고 있다.
“전북대학교에서 십이지궤양과 위암판정을 받았습니다.”
군산에이스중앙교회를 개척후 5년만에 이형렬 목사는 또다시 주치의로부터 사형선고를 받는다. 2003년도 12월 18일이었다. 암울한 시간였다. 20대의 시간이 고스란히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1개월 후에는 장경동 목사 초청 부흥회가 예정돼 있었다. 주치의의 수술권고에도 그는 부흥회 준비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특히 그는 부흥회 기간에는 뜨거운 찬송과 함께 은혜를 사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깨끗하게 치유됐다는 주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흥회를 끝내고 이형렬 목사는 서울세브란스병원에서 재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또다시 치유의 체험을 갖게된다. 얍복강가에 선 야곱의 치열한 쟁투의 삶을 그도 또다시 체험하게 된다. 놀라운 치유의 경험을 가진 그는 전국적인 부흥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교파를 초월해 영성회복의 성령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프로그램에 의한 목회를 지향하지 않았습니다.”
이형렬 목사는 성도들의 신앙교육과 함께 교회부흥을 위해 인위적인 프로그램을 금해왔다. 그 이유는 그의 목회철학에 있다. 그는 항상 예배와 설교 가운데 목회자의 신학과 목회철학이 묻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예배와 설교중심의 사역을 펼쳐왔다.
“한국과 대만의 교회 비교신앙은 흥미롭습니다.”
몇해전 이형렬 목사는 대만장로회신학대학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 주제가 ‘대만의 교회가 부흥’이 어려운 이유였다. 결과는 간단했다. 대만은 순교자의 부재였다. 한국은 근대 역사를 통해서 순교자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의 나라 대만은 그간 복음을 위해 헌신한 단 1명의 순교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사실 복음화율이 떨어지는 경상도에도 순교자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는 순교지가 조성돼 있습니다.”
경남 선교 120주년을 기념해 경남ㆍ부산지역에서 활동하다 순직한 호주 선교사 8명에 대한 묘원이 2009년 9월 19일 준공됐다.
일면 ‘진둥고개’로 부려진 이 고개에서는 인민군이 낙동강을 점령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묘원에는 1889년 인천과 서울을 거쳐 부산에 첫발을 내디딘 죠셉 헨리 데이비스 초대 선교사를 비롯해 아더 윌리엄 앨런 등 8명의 순직 선교사가 안식을 취하고 있다.
“호남의 예루살렘인 군산, 익산, 군산지역에 믿음의 선진들을 대면할 수 있는 기념관이 없다는 것은 수치일 수도 있습니다.”
전북지역의 교회와 성도들이 앞장서 믿음의 선진들의 면면을 대할 수 있는 기념관을 조속히 건축해 다음세대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형렬 목사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보다 전북지역의 모든 성도들이 협력해 기념관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저희 교회는 수평이동한 교회가 아닙니다.”
한 영혼을 위해 피와 땀이 담겨져 교회의 공동체를 이뤄가고 있는 에이스중앙교회는 인도, 필리핀,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해외선교에도 일조하고 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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