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V/교회사람들

금모래마당 농장대표/조성천 집사의 농촌이야기

153뉴스 tv 2013. 7. 6. 08:38

 

 

 

영농현장에서 IT를 활용 농가소득증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금모래마당 농장대표 조성천 집사(들꽃교회).

조성천 집사는 지난해 김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전자상거래농업인육성 교육을 통해

 IT를 활용한 영농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는 어느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김제시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에서

전자상거래 농업인 육성교육수강생 모집과 농촌에 대한 Vision을 알게 됐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블로그 포스팅과 페이스북 등을 활용한 IT영농을 도입하게 됐습니다.”

조성천 집사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이수하면서 정확한 영농 목표 설정과 함께

현재 금모래 마당 농장 대표로서 꿈을 꾸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조선천 집사는 건축을 전공한 공학도(전북대)이다.

서울에서 한국전력과 두산중공업에서 근무하면서 그는 부서장까지 역임하는 등

직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하지만 명퇴와 함께 그에게 찾아온 삶의 딜레마는 혼돈의 연속이었다.

그는 농촌에 살면 직장생활보다 맘 편하고 행복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퇴직후

고향인 전북 김제시 금산면으로 내려와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쉬울것 같던 농사는 무척 어려웠습니다. 농사라는 것이 땅에 씨 뿌리고 물만 주면

햇볕이 알아서 키워주는 줄 알았습니다.”

귀농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조성천 집사는 그간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먼저 귀농했던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조금만 기울였어도 그런 좌절은 겪지 않았을 것.

 

 

농촌 생활에 경험이 없었던 저는 수년간 시간과 농기구, 비닐하우스, 모종, 씨앗, 농약, 거름 등의

구입비용으로 많은 비용을 허비했으나 결실은 없었습니다.”

조성천 집사의 귀농 생활중 가장 큰 어려움은 애써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어려움이었다.

헐 값과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등 새내기 농사꾼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뒤따랐다.

반복되는 따분한 현실은 농촌생활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에 이르렀다.

 

전자상거래 농업인 육성교육을 열심히 배우고 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하다보니 김제시 사이버농업 연구회와

전북사이버농업연구회 회원이 됐습니다.”

고진감래, 조성천 집사는 그간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전북농업인 블로그 기자단으로 위촉되는 시간도 가졌다.

또한 기자단으로 취재활동 중, 성공한 선배 영농인의 실천사례를 교훈 삼아 영농에 접목해

지금의 멋진 농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더불어 그동안 판매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현재 매실을 시중가 보다 좋은 가격으로 모두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되기까지의 주된 이유는 전자상거래 농업인 육성교육에서 배운 포토샵기법, 사진 촬영술,

블로그 만들기 등을 활용하여 블로그를 잘 관리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금모래농장의 지리적 여건은 모악산으로부터 아침에 해가 뜨고, 농장 옆으로는

원평천 시냇물이 굽이 굽이 흘러 김제평야 벽골제를 지나 서해안 새만금 방조제에 이른다.

 

저를 안타깝게 보던 이웃 어른들께서는 농사의 노하우를 가르쳐 주기 시작했습니다.

씨를 뿌리는 시기, 농약의 종류, 거름 주는 방법 등 소중한 것들을 일러 주셨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농사꾼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가장 힘들 때 이웃 어른신들의 도움을 받아온 조성천 집사는 간단한 서류처리 등 업무를 도맡아 오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실제로 조 집사는 마을에서는 마을 청년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눈을 더 크게 뜨고 보니, 농촌에서의 노인복지가 턱없이 부족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노인분들이 생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한 실정이고, 정말 그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성천 집사는 현재 귀농의 성과를 활용하고, 농촌 복지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친환경 복지 농장을 구상,

평생교육 사회복지전공도 가졌다. 그는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꿈을 구체화 할 수 있는 희망을 얻었고,

학위 취득 이후에도 농촌 복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오늘도 꿈을 나른다.

<임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