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기독신문TV/교회와사람

인터뷰/한일교통 대표이사 이경희장로

153뉴스 tv 2012. 6. 27. 23:11

 

전주시 팔복동 4가 감수리 마을에 소재한 한일교통을 28일 화요일 오후 2시에 찾았다. 네비게이션의 부재로 줄비하게 엮어진 팔복동 공업단지 골목길을 20여분 헤메다가 한일교통을 발견했다. 회사로 들어서자 800여평 대지 위에 사무실은 2층 조립식으로 지어졌다. 사무실에서 늦은 점심을 마친 이경희 장로를 만났다. 지난 10일 교회창립 66주년 기념식에서 은퇴식을 갖게된 감회와 신앙여정을 듣기로 한 것이다.

 

한일교통 대표이사인 이경희 장로는 1993년부터 회사를 견실하게 경영해왔다. 회사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장로는 사람과 환경 사이에 조화를 이루면서 멈추지 않는 견실한 성장을 추구한다.

 

5-6평의 아담한 규모의 이 장로의 집무실은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삶을 대변하는 듯 했다. 소박한 쇼파와 책상과 책꽃이는 평이하고, 사무실 한켠에는 20여년전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았다는 낡고 오랜된 금고가 놓여 있었다. “일제 시대의 산물일입니다.” 이 장로는 버리기가 아쉬워 지금껏 동거동락했다며 금고에 대한 애착심을 보여줬다.

 

이 장로는 평소 이 지역에 그리스도의 푸른계절이 꽃피는 것을 소망했다. 역동적인 복음의 역꾼으로, 청년의 마인드를 가지고, 전주 금암교회를 교회를 지난 1973년부터 40년간 섬겨오면서 지역 교계와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보수주의 신앙을 견지해 온 그는 교회생활에서 사상으로 인해 한 때 많은 갈등 속에서도 신앙으로 극복하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이 장로의 미소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또, 음악을 좋아하고 멋드러진 지휘자를 꿈꾸는, 섬세한 감성의 젊음을 소유한 노신사이기도 하다.

 

“전북대(화공과) 재학시절 KSCM기독학생동아리에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신흥중 시절부터 교회에 출석해 온 이 장로는 전주효성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군제대후 부모님과 함께 금암교회에서 출석하면서 청년회장, 남신도회장,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등 교회 각 부서를 통해 섬겨왔다.

 

지난 2001년부터 시무장로로 섬겨온 이 장로는 “지금까지 가정과 자녀들 그리고 회사까지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평탄한 길로 인도해 주셨다”며 은퇴 감회를 전했다.

 

-. 은퇴감회는.

“아쉽습니다. 좀더 교회와 교회와 지역사회를 헌신적으로 섬겼어야 했습니다. 앞으로 기력이 허락될 때까지 복음을 위해 분발할 것입니다. 교회와 교계, 지역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정진할 것입니다. 현재 섬기고 있는 기독단체와 직장 선교를 위해 초심을 잃지않고 푯대이신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전파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

 

-. 은퇴에 대한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들었다.

“저는 어릴적부터 장로직에 대한 의문을 품었습니다. 공무원도, 대통령도 임기가 완료되면, 퇴임을 하는데 장로직의 항존직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앞선 장로들이 길을 열어줘야 후배들이 장로임직을 통해 교회에서 헌신할 수 있다고 평소 지론으로 여겨왔습니다. 만약에 제가 장로임직을 받는다면 7년간 시무장로로 교회를 섬기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서울 사랑의 교회가 장로 시무기간이 7년입니다. 저도 7년만에 담임목사님께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범선 목사님께서 선교사로 헌신하시고, 선교지에 부임하는 계기로 교회의 안정을 위해 2년간 연장이 됐습니다. 당시 장로사임에 대해서 교회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 장로 시무시 특별한 의미있는 섬김은.

“제가 특별기금관리위원장을 맡아 봉사할 때, 교회 주차장 확대공사가 있었습니다. 그 공사를 진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자금도 부족하고, 토지소유자들과 협상과정에서도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정과 회사를 통해 축복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나눠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주차공사의 원할한 진행을 위해 2회에 걸쳐 600여평(10억여원)의 부지를 구입해 교회에 봉헌했습니다.”

 

-. 가족신앙의 특징은.

“저희 부친께서 가끔 표현을 하십니다. 저 때문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고백하십니다. 사실 제가 먼저 교회에서 봉사하며 교회를 섬겨왔습니다. 부친께서 저의 교회활동을 보시고, 헌신하셨습니다. 부친께서는 지난 1991년부터 시무장로로 금암교회를 섬기셨고, 제가 2001년부터 시무장로로 대를 이어 섬겨왔습니다. 저희 부친께서는 국가에 대한 안보의식 남달랐습니다. 국가가 안정돼야 국민이 잘 살 수 있다는 확고한 의식을 가졌습니다. 사실 기장측과는 상반된 사상입니다.”

 

-. 특별한 사회활동은.

“전주상회의소 대표의원으로 20여년간 활동했습니다. 그 모임에는 장로인 제가 유일했습니다.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저의 정체성을 잃지않고, 기독교를 대변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검찰청청소년 선도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는데 게을리지 않았습니다. 이밖에 동전주청년회의소 회장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사회활동은 복음의 도구로 사용해 왔습니다. 물론 저의 자아 성취를 도와줄 도구로, 그리고 봉사의 도구로도 양면의 날개를 택한 것입니다.“

 

-. 교계 활동은.

“지난 2005년 전주기독실업인회 회장으로 , 1년간 섬겼습니다. 라이즈업코리아 청소년본부 전주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중고등부 학원복음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입시위주의 교육시스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 사역자들은 확실한 소명 의식과 철저한 자기 헌신 그리고 눈물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 레인보우성악연구회에서 단원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단원들이 모여 연구하고, 매년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정기발표회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적부터 음악에 대해 남달랐습니다. 성가대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기 위해 5년간 성악레슨도 병행했습니다. 4년간 회장으로 섬겨왔습니다.  일상에 지친 이들에겐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연주하는 것이 행복하고 만남 자체를 즐기고 있습니다. 지역의 음악 발전을 위해서도 부족하지만, 모퉁이 돌을 쌓아간다는 취지로 기량을 닦아 감동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