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V/교회사람들

전북제일노회(합동) 선교부장 이철규 목사

153뉴스 tv 2016. 1. 8. 03:51

 

 

 

 

 

 

 

지난 5일 오전 11시 합동 전북제일노회 신년하례회에서 선교부장 이철규 목사는 2015년 인도단기 선교보고를 가졌다.
2014년과 2015년에 이어 2년 동안 선교부장을 역임하면서 제일노회와 노회 산하 지교회에 선교에 대한 비전과 꿈을 제시한 이철규 목사는 이날 100여명이 모인 노회 소속 목회자들에게 인도 델리 지역과 기타 지역을 방문한 내용을 전했다. 7일 오후 4시에 이철규 목사가 섬기고 있는 주바울교회 목양실에서 만나 그의 대학생 사역과 세계선교에 대한 꿈을 들었다.

 

이 목사가 노회 선교부장을 맡아 선교에 대한 불씨를 살려낸 것은 평소 대학생 선교와 세계선교에 전념하면서 노회 회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이 목사는 “해마다 노회 소곡의 일원으로 참여도가 빈약했다. 정기총회 등 일정에만 참여해 노회 소속 목사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 이에 전 노회장 김동하 목사님의 제안으로 선교부장을 맡아 노회를 살리고, 지교회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노력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철규 목사가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1984년이다. 전북대 재학시절부터 CMI(국제대학선교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었다. 그런던 그가 어느날부터 전임사역에 나섰다. 그때가 1991년이다. 전주에 국제대학선교협의회가 설립된 것은 1978년도. 이 목사는 “친구들의 권유에 시작한 대학생 사역이 전임 사역으로 진행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의 통로가 됐다”며 고백했다.

 

이철규 목사와 선교부 회원의 노력으로 제일노회는 선교하는 노회로 바뀌었다. 선교정책이 달라졌다. 선교비 예산도 늘렸다. 파송선교사 14명에게 매월 정기적으로 10만원 이상 지원하고 있다. 또 선교 현지에 특별 상황이 발생하면 특별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이 목사는 “명절에 선교지에서 지역민들을 섬기고 있는 선교사님들에게 전화 한통으로 안부를 전해도 이들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된다. 졸업식 등 기타 사안에 따라 30만원 정도 선교헌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회 선교부원들도 각각 회비를 각출해 선교비를 지원하고 있다.

 

제일노회는 노회 소속 선교사들이 고국을 방문하면 노회 산하 3곳 교회 이상을 방문해 선교보고를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선교사들이 방문하면서 선교지에 대한 소식도 공유하고, 성도들도 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동참하고 있다. 각 교회나 성도들이 나서 단기선교와 함께 선교비 지원도 겸하고 있다. 이 목사는 “선교사님들이 방문하면 좌담회도 마련해 선교사님들의 삶의 어려움과 선교지의 선교이야기를 듣고 있다. 목회자들 모두 기뻐하며 이에 동참하고 있다. 상명하복 절차에 의한 선교보고가 아닌 파트너쉽 동등한 위치에서 선교보고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 이번 단기선교에 나서게 된 것은.
“인도 델리에서 하층 계급의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사역에 전념하고 있는 이정근 선교사님의 요청으로 지난해 12월 10일부터 23일까지 12박 13일 동안 제가 섬기고 있는 주바울교회 집사님과 간사님 그리고 청년 등 5명이 다녀왔다. 이정근 선교사님은 20여년 델리에서 사역을, 그의 아내 박행옥 선교사님은 25년 동안 사역을 펼치고 있다.”

 

-. 이정근 선교사님의 사역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델리신학교를 설립해 지도자 양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신학교를 졸업한 전도사님은 11개의 교회와 11개의 어린이학교에서 멘토 역할을 맡고 있다. 이정근 선교사님께서 세운 교회와 어린이학교이다. 어린이학교는 한국교회의 선교원으로 생각하면 된다. 성탄절에는 11개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4,500여명 참석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며 행사를 가진다. 현재 이정근 선교사님은 신학교 건축과 10개 교회 설립 비전과 어린이 사역을 위한 성경학교 교사훈련을 추가로 진행하고 있다.”

 

-. 이번 단기선교에서 다른 사역지도 순회하셨다는데.
“델리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도영 선교사님을 뵈었습니다. CMI 동료 선교사님이십니다. 이 선교사님은 자비량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근 선교사님은 빈민사역을, 김도영 선교사님은 인도의 상류층을 대상으로 사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델리대에서 교수로 섬기면서 젊은층을 대상으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델리에 28개 지부가 설립돼 있고, 디렉터만 6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 델리대와 나루대에 200여명의 목회자와 800여명의 리더들이 복음사역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100% 자비량 선교사역은 선교학자들의 연구대상입니다. 무엇보다 상류층인 브라만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는 것과 힌두인들 대상 사역, 그리고 인도인에 의한 구제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김도영 선교사님의 기도제목은 비전센터 건축과 100만명 리더 세우기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가 기도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

 

-. 25년 동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역에 전념하고 계시는데, 왜 대학생 선교운동이 필요한가?
“대학은 국가의 심장 - 대학은 리더를 각 분야에서 양성하는 곳이므로 대학의 이념과 목표에 따라 국가와 민족의 장래가 좌우된다. 대학생들의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역사관에 따라 새로운 역사창조의 성패가 결정된다. 세계복음화는 대학가에서 시작 된다. 청년 시절 부름 받은 많은 신앙 선배들이 있다. 성 프란체스코, 사보나롤라, 로욜라, 후스, 루터, 에라스무스, 웨슬리, 존 마트 등. 대학생 선교운동은 영적 각성운동의 모판이며, 캠퍼스 지성인들의 가능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세대에 걸쳐 역사화하고 세계화하는 실제적인 성령운동이다. 지성과 신앙 모두에 뿌리를 내리고 양면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운동으로 과거 역사적 업적과 전통을 뛰어넘어 새 역사를 창조, 다음 세대를 담당할 수 있다.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해야 한다. 동시대 사람이 전해주지 않으면 다른 세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없다. 각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임을 가지고 있다.

 

-. 한 국가와 세계를 재난과 위기에서 건지기 위해 하나님께서 젊은 대학생들을 친히 일으키셨다는데.
“하나님께서는 한 국가가 정신적, 도덕적, 영적으로 타락하거나 위기일 때 죄악의 잠에서 깨어나게 하실 때, 옥스퍼드 출신 웨슬리 형제와 조지 휫필드를 중심으로 시작된 복음주의적 감리교운동과 영국의 모든 사회개혁 운동을 추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예를 들면 1800년대 후반 약 20년간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서부개척 등의 영향으로 개인주의와 한탕주의, 자유주의,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했던, 미국 역사상 영적, 도덕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기에 윌리엄스대, 하버드대, 브라운대의 기도모임을 통해 미국을 다시 살리는 영적 각성운동이 일어났다.”

 

-. 대학생 선교운동의 부흥이 국가의 발전과 비례하여 동일한 성장 곡선을 그린다는데.
“기독교 인생관, 세계관에 입각한 사명감 있는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양육되기 때문이고, 문화의 유산과 신앙의 유산을 물려 받은 ‘문화의 소우주, 역사적 공동체’ 가 바로 대학가이다. 그러나 민족주의, 합리주의, 과학 발전 등으로 대학의 본질이 변질되어 기능적 기관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런 대학사적 현실과 대학의 위기를 성경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대학생 선교운동이다. 이런 점을 잘 반영한 예가 옥스퍼드 대학의 5대 특징에 나타나 있다. 첫째, 기술 훈련이 아닌 인격 형성에 목적을 둔 지적 개발, 둘째, 기술 교육보다 마음과 정신의 영역을 넓히는 보편적인 교양 교육, 셋째, 정보와 지식을 수집하기보다 사물과 사건을 소화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능, 넷째, 교수와 학생 간 인격적 배움의 공동체, 진리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사회에 헌신할 수 있게 하는 신앙교육, 다섯째, 대학은 지성과 신앙의 두 뿌리를 가진 인격적인 진리의 공통체여야 한다. 대학생선교운동과 학문이 공존해야 한다.

 

-. 대학생 선교운동의 역사적, 사상적 탄생 배경을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생명을 상실한 기독교 형식주의와 권위주의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시대의 기독교와 교회가 생명력을 잃어가거나 형식화될 때 탄생. 즉 젊은이들의 영적 갈망과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발생한다. 경건주의 운동도 개신교의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의 형식주의와 죽은 전통과 같은 스콜라주의적 신앙에 대한 내적 개혁운동으로 일어났다. 루터교가 형식과 제도로 인해 생명력을 잃고 권위주의에 빠졌을 때 루터교회 목사였던 필립 스패너가 소그룹을 조직하여 성경공부, 중보기도, 회개, 중생, 경건한 삶과 전도를 생활화하기 시작했다.”
/임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