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길선주 아내 김중섭 사람들(수근거리는 소리) 어머니
# 평양 장대현 교회의 담임목사 길선주
(부흥의 현장에 선 길선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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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던 평양.
그곳의 장대현 교회는 평양의 첫 교회이자
1907년 대부흥운동의 시발점이 된 희생과 헌신, 사랑의 현장이다.
성령의 불이 바람같이 전국으로 퍼졌던 당시,
어두운 눈에도 불구하고 전국을 누빈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평양 장대현교회의 담임목사 길선주다.
# 어린시절 길선주
(매우 가난했으나 영특했던 어린 길선주.
공부하는 모습, 가난한 가정의 모습(먹을 것, 입을 것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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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주는 1896년 3월 15일 평안남도 안주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비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한학에 특출함을 보였던 그는
배고픔만이 아닌 마음의 가난을 메우기 위해 어렵게 한학과 도교를 배운 후
지방 서기 관직으로 일했지만 신분의 한계로 말단 일만 하게 되고....
그의 번민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 16세 가량의 길선주.
지방 관직에서 설움을 받고,
가난과 배우지 못함의 한을 한탄하며...
길선주: 가난이 가난을 부르고, 배움이 신분을 결정하니...
많은 나날을 어찌 살아야할까?
# 지방 관직을 그만두고 행상에 나선다.
NA
지독한 가난으로 행상을 나섰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그는 결국 세상을 등지게 된다.
그리고 25세가 되던 1893년, 도교를 배우기 위해 평안남도 안국사에
들어가기에 이르는데
# 평안남도 안국사에서 명상과 기도로 수도생활을 하는 길선주
# 무리한 수도로 시력을 잃는 과정
동굴이나, 광야를 찾아 고통스런 수도 생활을 하는데...
(얼음물을 길어 눈에 붓는데,
여러날을 그렇게 하자 각막이 손상되었다고 한다.)
NA
진리를 찾기 위해 40주야를 명상과 수도로 보냈던 그는
잠을 물리치기 위해 얼음물을 길어 눈에 붓곤 하였다.
도교에 발을 들여놓은지 5 년, 그는 그만 시력을 잃고 만다.
# 산에서 내려운 길선주를 맞이하는 어머니.
길선주는 시력을 잃고 지팡이를 의지한채 집에 들어선다.
어머니: 아이고, 못난 놈. 도교가 밥 먹여준다던...
못난놈. 못난놈.
# 시력을 잃은 후 날로 깊어가는 번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에 빠진 길선주 (방 안)
길선주: 진리를 찾으면 무엇할꼬.
이제는 앞도 보지 못하는 장님인데...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NA
시력이 흐려진 후 그의 고통을 날로 더해갔다.
# 그의 집에 김종섭이 찾아오는데...
그에게 성경과 천로역정을 건네며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김종섭: 자네.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그동안 자네를 얼마나 찾았는데...
나도 신선의 힘을 빌어 인생의 길을 찾으려 했으나 모두 허사였네. 지금 나는 하나님을 믿네. 그의 능력으로 새 사람이 되었어.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삶이 나를 채우고 있네.
# 성경을 마주한 길선주.
힘들게 성경을 읽어보려 애쓴다. (약간의 시력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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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주를 부르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을까.
세상의 빛이 거둬진 후 길선주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 아내에게 천로역정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길선주.
NA
종교적인 심성이 누구보다 깊고 예민했던 길선주는 어느 날 ‘천로역정’을
접하게 되고, 눈먼 그를 위한 아내의 낭독은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다.
길선주: 그 부분을 한번만 더 읽어주시오.
아내 : 아, 나의 인생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무엇이 나에게 참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 물 세례를 받는 길선주
죄를 고백하는 독백 장면
NA
아내가 읽어주었던 천로역정, 곧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영혼 깊숙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6개월 후. 길선주는 이길함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게 된다.
이길함: 이제 길선주는 하나님의 택한 받은 자가 되었노라.
길선주: 아멘. 오 주님. 나를 용서하소서.
당신만이 나의 빛이고 생명임을 몰랐습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사 저의 헌신을 받으시고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옵소서. 오 주님. (울먹)
# 하나님을 만난 후 고향으로 향하는데...
장님이라 가는 길이 순탄치 않지만 당당한 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장님이라 수근거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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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육신의 시력보다 소중한 영적 시력이 그를 위로하였고
그는 곧 복음에 붙들려 그리스도의 이름을 품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가 처음 한 일은 바로 전도였다.
# 고향집 마당에서 무릎 꿇고 통회하는 길선주와 그의 어머니, 아버지
길선주: (울먹) 어머니, 아버지. 못난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는 비록 앞을 볼 수 없으나 행복하며,
비록 저는 제 한 몸 온전히 가누지 못하지만 감사합니다.
그것은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의한 것입니다.
못난 아들을 용서하여주옵소서.
어머니: (울먹) 선주야. 선주야.
내가 너에게 용서를 빌고 싶구나.
어머니를 용서해다오.
NA
성령의 역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길선주 가족의 변화는 그의 마을로, 평양으로, 전국으로 퍼지는
불씨였으리라.
신앙의 첫 고백은 믿음의 열매가 되어 그는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길선주
처음에는 장님이라는 수근거림이 있었지만
이재 장내가 숙연해진다.
사람들: 장님이잖아. 재수 없게. 아침부터...
길선주: 저는 장님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제게는 빛이 있습니다.
그 빛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비추며, 동일하게 길을 보입니다.
그 길은 사랑과 희생과 영원의 길입니다.
빛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여러분을 비추고 있습니다.
빛은 영원이며 빛은 생명입니다.
여러분 주의 이름 앞으로 나오십시오.
보혈의 능력 앞에 죄를 고백하고, 헌신하십시오.
우리의 삶이, 가정이 변할 것입니다.
이 땅이 거룩하게 변할 것입니다.
# 평양동서문교회에서 섬기는 모습.
게일 선교사와 이길함 선교사의 권면으로 신학교에 입학, 졸업
최초의 목사가 되어 강단에 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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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은 후 평양 동서문교회의 영수로 섬기며 헌신했던 길선주는
28세 되던 해 번창하던 약방을 포기하고 주의 일을 결심하게 되는데
1903년 평양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해 1907년 졸업한다.
최초 7명의 평양신학교 졸업생 중 한 사람, 길선주는 최초의 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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