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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미 가나 선교사 -만난봅시다

153뉴스 tv 2015. 11. 11. 20:23

 

 

지난달 24일 가나에서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는 유정미 선교사가 사랑나눔교회 담임 박주삼 목사 초청으로 전주를 방문했다. 이날 유 선교사는 가나 선교사역을 후원하고 있는 기도선교사들과 함께하며 선교보고회를 가졌다. 이날 유 선교사는 자신을 아프리카 선교사로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와 함께 현재 펼치고 있는 사역에 대해기도교사들에게 선교사역을 간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 교사는 1994년 3월 5일 토요일 새벽에 아프리카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을 받았다. 그 부르심 이후 올곧은 선교사역을 펼쳐온 유 선교사는 아프리카에 신학교를 설립해 주의 종들을 양육하며, 아프리카의 모든 족속을 성령의 불길로 태우시라는 성령의 감동의 순종하며 사역을 펼쳐왔다. 특히 히브리서 11장 16절의 말씀 말씀은 유 선교사의 영과 혼과 육과 관절과 골수를 태웠고, 하늘의 본향을 향한 선교사로서의 헌신을 다지는 말씀이 됐다.

 

1994년 7월 말에 2주간의 여정으로 가나를 방문한 유 선교사는 히브리서 11장 16절 말씀을 통해 약속하셨던 신학교 건물(3층 미완성)을 매입하케시는 하나님의 전능의 손길을 체험했다. 유 선교사의 첫 번째 선교사역은 제자양육였다. 이에 그는 가나신학대학(The Bible College of Ghana)을 설립했다. 이 학교에서는 지적, 영적 암흑 속에서 방황하는 현지 종들을 위해 신학 지식과 신앙이 어우러진 전인적인 목회자 양육을 목표로 삼고 전념해 왔다. 이 학교에서는 성교육, 윤리교육, 교회 개척 사역, 미전도종족, 토속무속신앙지역, 무슬림 지역 복음화 등 다양한 교육과 제자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유 선교사는 “가나는 75개 부족이 살고 있다. 각 지역마다 전통과 관습에 따라 추장이 다스리고 있다. 법은 일부일처제지만 세력 있는 추장은 부인을 3-4명 두고 있다. 성문화가 전통적으로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그 여파로 결손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고 설명했다. 원주민들은 자유로운 성문화 속에서 성장해 성문화에 대해 대체로 자유로운 사고를 품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성문화에 대해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왔다.

 

유 선교사는 교회 개척을 산간벽지촌, 어촌, 강촌 등 흩어져 있는 여러 마을들 가운데 중심이 되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했다. 유 선교사는 “그 교회를 중심으로 2,000여명 이상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지역을 우선 선정했다. 또한 자립이 가능한 도시에 교회를 개척해 부흥시켰다. 도시 교회를 통해 자립이 안 되는 농·어촌 교회들을 후원하도록 했다”고 했다.

 

가나는 영어가 공용어지만 현재에도 각 지역에 따라 튀어, 에위어, 가어, 판티어 등 10개 부족어를 사용하고 있다. 가나인끼리도 부족어가 다른 경우 의사 소통이 잘 안 된다. 유 선교사는 “목회자를 파송할 때에 그 지역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목회자를 파송하고 있다. 지역 부족어를 사용하여 친밀감과 유대감을 갖게 하여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영접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나는 전통적으로 부족사회가 이루어져 추장의 권위와 존경심이 높다. 유 선교사는 개척 지역을 선정한 후에 먼저 추장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맺었다. 유 선교사는 “먼저 추장과 장로들을 전도해 복음을 받아 들이도록 했다. 그 여파로 전도의 문이 쉽게 열려 많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교회 행사, 교회 건축, 교회 농장 등 협력을 요청하면 추장의 협조아래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며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전했다.

 

예배 장소는 그 지역에서 생산하는 대나무와 나뭇잎을 이용하여 작은 예배당을 마련하거나 학교 건물을 빌려 예배와 기도모임을 가졌다. 이후에 예배 출석인원이 40~50명 정도가 모이고, 우기철에 장대비가 쏟아져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면, 교인들이 힘을 모아 교회 건축에 나섰다. 유 선교사는 “기도의 응답으로 교회 건축헌금이 모아졌다. 교인들은 기쁨으로 봉사했다”고 했다.

 

유 선교사는 이와함께 지하수, 우물파기, 수도설비는 지역 주민들과 협력해 공사를 진행했다. 유 선교사는 “가나 전통무속신앙과 무슬림이 강한 아베지 마을에 상수도 공사를 하기로 했다. 수도국 공사 견적비가 2,500만원이었다. 우리는 처음에 지하수를 개발하고자 500만원의 예산을 세웠다. 수도국 국장을 만나 가나 수도국에서 1,500만원을 후원하겠다는 약정을 받았다.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3개월 만에 아베지 마을에 수도관이 연결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수도물이 공급됐다"고 했다.

 

가나는 빈부차이가 심하다. 하루에 한끼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끼의 식사도 골고루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켕키, 방쿠, 얌, 옥수수 등으로 한 끼를 떼운다. 가나의 교인 대다수가 작은 농장을 가꾸어서 가족들의 끼니를 이어갈 정도의 수확을 한다. 따라서 목회자의 사례비 및 교회의 운영도 어렵다. 유 선교사는 “교회의 자립을 위한 차선의 선교 전략은 농장 개발이었다. 한 교회의 자립을 위한 농장 개발은 5,000평 정도의 땅이 필요했다. 농지 구입비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농장의 묘목은 옥수수, 냠, 고추, 카사바 등등의 1년생 수확물과 오렌지, 파파야, 팜츄리(식용유), 망고 등의 과실수를 심어 30년간 지속적인 수확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선교사는 또, 농장의 수입을 통해 교회의 자발적인 2차 농장 개간이 가능하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지속적인 농장의 개간을 통해 지역 주민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농장의 수입을 가지고, 지역사회의 공동개발비(우물, 공동화장실)후원, 병문안 및 교회 운영비, 선교원, 초등학교 후원 등 사용했다.

 

유 선교사는 이밖에 베고로고아원 사역, 문맹퇴치를 위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가나신학대학은 1997년 개강 이후에 2014년까지 졸업생 400여명을 배출했다. 유 선교사는 “졸업생들이 각 교단으로 돌아가 개척한 교회가 500교회가 넘는다. 이들을 통하여 주님의 나라가 가나와 아프리카 전역에 확장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임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