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V/교회사람들

성은순 회장

153뉴스 tv 2015. 10. 29. 04:54

 

 

금성장례식장 성은순 회장. 그는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꿈이 있어 헹복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중의 하나인 요셉은 꿈 이야기를 통해 온갖 고난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고, 이집트의 총리까지 오르고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청소년기에 정의로운 꿈을 간직한다는 것은 매우중요하다. 성은순 회장은 “꿈을 품고 자라는 청소년과 아무런 꿈 없이 자라는 청소년과의 차이는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선한 희망의 꿈이 있는 청소년들은 한때 방황과 잘못된 길로 나간다 할지라도 그는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고 전했다.

 

부모님의 총애를 독차지한 요셉이 형들에 의해 이집트의 국방부 장관격인 보디발의 집으로 노예로 팔려갔으나 그는 성실함을 잊지 않았다. 자신이 맡은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였고 희망의 꿈을 버리지 않았기에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성 회장도 “가난한 환경에서 절대로 희망이라는 꿈을 잃지 않았고 오직 희망이라는 큰 꿈의 닻에 기치를 올리고 무엇이든지 스스로 해결하며 생활했다”며 청소년 시절을 회상했다. 사춘기 시절에 자신의 또래와 동등하게 학업에 매진하지 못한 아쉬운 시절도 있었지만 반면 사업에 대한 인프라도 구축하게 됐다고 밝혔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첫 월급의 8만원 가운데 7만원을 모친의 안경을 맞추어 드리는데 사용하는 등 남은 1만원도 어머님께 드렸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 감격의 눈물도 흘렸다.

 

그는 “그 시절 대한민국 경제적으로 어려웠었고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아주 적은 금액으로 집안을 위해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 뿌듯했다”며 집안의 경제 회복을 위해 희망의 꿈을 가지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속내를 밝혔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성 회장은 부모님의 기대감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성은순 회장의 인생 2막 1장은 과일 노점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에게 노점상은 입에 풀칠은 해결해 주었지만 자신의 삶의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업종변경을 시도하게 됐고 가정과 사무실 난로용 석유배달부터 새로운 사업에 나선게 된다. 주유소 경영은 성 회장 남편의 어린 시절 꿈이기도 했다.

 

성 회장은 “통배달부터 시작한 석유배달 사업은 모진 노력 끝에 소규모의 주요소를 경영하게 됐다. 주유소를 운영할 때가 숨 가쁜 시간이기도 했지만 행복했었다“고 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있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 자그마한 성취감을 느낄 때가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하는 성회장은 한번 목표를 정하면 반듯이 시도해 보고, 매사에 성실히 노력하면서 조금씩 사업이 확장돼 나가는 보람을 즐겼다.

 

하지만 확장일로의 길을 걷던 성회장의 사업장에 탱크로리 차량전소 사건이 발생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 사건으로 성은순 회장은 인생 2막 2장이 시작됐다. 성 회장 두 부부는 이 화재 현장에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앞에 손을 들었다. 이때 이들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고, 이들 부부는 주일성수와 함께 십일조를 철저히 지켜나갔을 뿐만 아니라 개척교회를 돕기 시작했다.

 

성 회장은 “석유배달을 다니면서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직접 보고 느꼈다. 그래서 무명으로 개척교회를 섬기고 지원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성 회장은 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석유 유통사업의 구조를 더욱 철저히 분석하면서 성실히 사업을 확장해 나아갔다. 전화주문 유통방식으로 사업 확장을 추진했다.

 

누구나 인생의 전환점은 있다. 성은순 회장의 인생 3막 1장은 장애우들과 차상위계층들을 위한 복지향상과 지역민들을 섬기는 축구연합회장과 여성주민자치위원장에서 출발했다. 밤낮 사업에 전념하던 그가 지역 축구연합회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생활정치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선한 열정에서 출발했다. 축구연합회장을 수락하면서 지역봉사와 함께 주민 화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됐다.

 

성 회장은 “회원들과 함께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봉사하는 일들은 즐거움과 보람으로 항상 가슴이 벅차고 설랬다”며 지역민들의 어려운 일들과 지역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에게서 축구는 지역민들의 화합과 함께 섬김의 장이었다. 성 회장은 “하루 일과가 아쉬울 정도이었다. 사업가로서 열심히 살아왔고, 한편으로는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인의 대모역할’까지 도맡았었다”며 열정적인 대장부 기질을 발휘한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했다. 2005년도 성 회장은송천동 주민자치위원장에 선출된다. 주민자치위원장은 대부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이후로 전국 곳곳에서 여성 주민자치위원장이 선출되기도 했다.

 

성 회장은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으면서도 다양한 형태의 민원을 해결하는 공무원들의 어려움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지역민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민원을 해결하는데 앞장섰다고 밝혔다.

 

성 회장은 자치위원장을 맡아 지역민들의 민원을 처리하면서 한 사람의 힘으로는 그 어떠한 일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경험하게 된다. 이에 주민자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참여한 주민들에게 일정한 권한을 부여함과 동시에 주민들이 주체가 돼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갔다.

 

성 회장은 “지역사회의 발전은 더 이상 중앙 정부나 행정의 주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도했고, 주민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주제와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주제와 영역에서 주민들이 자신들의 욕구와 이해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 회장은 2011년도에 전북장애인복지문제연구소 제4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지인의 권고로 이사직을 수락하고, 장애우들을 위한 섬김의 일에 전념하던 성 회장은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장애우 복지정책을 위한 노력에 최선의 경주를 펼쳐왔다. 1999년도에 설립된 이 단체는 장애우의 복지 및 권익, 장애우를 처벌하는 법과 제도 및 정책들을 조사·연구, 장애우에 대한 인식 개선 운동 전개, 교육 및 직업훈련 등 구체적인 사업 추진 등을 펼쳐왔다.

 

성 회장은 “전북장애인복지문제연구소는 그동안 장애인 인권캠페인,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고조시키고, 장애인의 인권신장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새롭게 발굴·시행해 왔다”고 했다.

 

성 회장의 인생 3막 2장은 국회의원 출마이다. 국회의원은 그에게서 지역발전과 국가발전을 위한 더 큰 봉사를 하고 싶은 꿈이다. 요셉은 성실한 희망의 꿈으로 인해 길이 열려 30세 나이에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성 회장은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고, 최선의 유산은 재산이 아니며 학벌도 아니고 평생을 지켜 나갈 꿈을 심어 주는 일이며 섬김의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성 회장은 이제 자신의 삶에 도전과 함께 자녀들에게 그 비전을 제시하고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 내고 있다.

 

성 회장에게 1차 관문인 당내 경선이 고비이다. 성 회장은 지난 10년간 그는 이를 위해 준비해왔다. 현재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있는 재학생이다. 사업을 병행하면서 그는 희망을 향한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매일 한걸음씩 도전해 왔다.

 

성 회장은 “매일 지역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도록 생활을 바꿔보려고 한다. 자기 주변의 작은 일이라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있다면 누구라도 개도의 의견을 표방하는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생활 정치이다”고 했다.

 

성은순 회장은 정치에 대한 강한 도전의지를 재차 표명했다. 자신의 자서전 제목에도 ‘누군가 기뻐할 일을 하고 싶다!’라고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