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dl라고 빅토르 위고는 인생의 행복을 정의합니다.
즉 , 인생최고의 행복=사랑받음의 확신입니다.
심리학자 '머슬로우'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5단계의 욕구가 있다고 분류합니다.
첫번째가 '생리적 욕구'
두번째가 '안전의 욕구'
세번째가 '사회(소속감)적. 욕구'
네번째가 '존경의 욕구'
다섯번째가 '자아실현의 욕구'
사울은 확실히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었으며 또 자기의 기념비를 세울 정도로 자아의 자존감이 절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 얼마나 실존적 매력있는 모습입니다.
머슬로우의 5단계 욕구를 철저하고도 순서적으로 만족시키는 사울의 모습을 봅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우리 자신과 닮은 사울의 모습에 오히려 우리는 그를 지적하시는 하나님과 사무엘에 대하여 이상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머슬로우의 최고 욕구(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 위에 존재하는 상위의 욕구를 사울은 놓치고 있습니다.
바로 "영적 소통의 욕구"입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소통하는 유일한 생명체입니다.
사울은 이 욕구를 놓치고 있습니다.
오직 자기 자아에 대한 실현만을 가치의 척도에 두었습니다.
3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백성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수단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이 어리석은 사울의 모습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울을 가엾고 동정하시며 슬퍼하시고 한탄하셨습니다.
35절의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에서 후회는 나함(H5162)인데 한글개역 번역의 오역인 것이죠. 왜냐하면 29절에서 사무엘선지자는 '변개함이 없으시다'라고 여호와하나님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함(H5162)'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의미로 번역을 해야 맞는거겠죠.
시편기자의 소원이 생각납니다.
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①오히려 안연하리로다 〔그 중에서 안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편 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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