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외에는 세상 것에는 관심이 없는 그리고 복음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40여년의 세월을 목회에 전념해 온 대흥침례교회 김광혁 담임목사.
그를 만인이 신사라고 부른다. 온유하고 덕이 있는 목회자, 차분하면서 강단있는 목회를 지향해온 목회자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를 품는 교회와 목회를 지향하며 숨가쁘게 복음의 전령사로 이 땅의 건강한 교회를 추구해왔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할 일, 즉 예배, 선교, 교육, 봉사를 균형과 조화롭게 최선을 다하는 목회 전선에서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국내외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저희 교회는 열린교회입니다. 365일 교회를 개방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사랑이 넘치고, 영혼을 사랑하는 지역의 교회로 성장해가며, 모든 사람들이 사랑과 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교회가 바로 대흥침례교회의 모토이다고 김 목사는 밝혔다.
대흥침례교회는 영적부흥이 있는 교회이다. 뜨거운 찬양과 기도로 신앙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교회로써 주님이 주신 모든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그리스도 안에서
지역과 해외 선교를 위한 복음의 도구로 부단히 사용되어지기를 노력해왔다. 지역복음화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부침개전도법’을, 해외선교는 월드비전(덕진지회)과 함께 ‘우물파주기’ 사역 등을 공유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매년 1월 첫주에 특별선교헌금을 작정하고, 세계선교에 집중하고 있다.
김 목사의 목회 동기는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삼례침례교회를 출석하면서 누구든 제자 삼는 목회에 대한 꿈을 가졌다. 당시 임문규 담임목사님과 사춘기 시절 고등부 선생님의 헌신과 사랑에 김 목사는 목회에 대한 부르심의 소명을 받았다. 복음 사역자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헌신과 뜨거운 열정이 그로하여금 위대한 비전을 품게 된 것이다.
시골교회는 흙으로 건축된 작고 낡은 교회였다. 아직 바닥이 마련되지 않아 쌀가마니 뜯어서 깔고 앉아 예배드리던 곳, 흙 냄새나고 어설픈 가마니 바닥에서 예배를 드리던 시절이었지만 김 목사는 여느 때보다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고등부 담임 선생님은 헌혈을 하고 받은 사비를 교회건물의 리모델링을 하는데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며, 헌신하던 모습에 김 목사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때부터 김 목사는 선생님의 신앙과 삶을 멘토로 삼고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그 선생님은 김 목사에게 희망을 불어 넣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였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김 목사는 가정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부친의 핍박을 받았다. 김 목사는 부모냐 혹은 신앙을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김 목사는 편하고 보장된 생활을 과감히 버리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집에서 나와 서울에서 1년간 공장(대성금속)에서 스스로 학비를 마련한다. 1967년에 대전침례신학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1974년 12월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김 목사는 스스로 목회에 대한 방침을 정하고, 실천해왔다. 미개척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영혼구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담고 스스로 전도해 제자양육을 이어왔다. 또한 복음적인 교회로 지역과 함께 성장해 가는 건전한 교회로 자리매김해왔다. 김 목사와 성도들의 뜨거운 열정과 그에 따른 결실이었다.
“저는 침례교단의 목회자가 된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김 목사는 38년간 목회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분란을 일으켜 교회에 어려움을 끼친 성도들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게 깊은 감사를 드렸다. 교회 개척과 동시에 1975년 1월 결혼을 하고, 사모를 제1호 제자로 양육하게 된다. 당시에는 밤낮 전도하는 것이 사역의 전부였다. 대흥침례교회 첫 번째 열매는 주일학교 아이들의 전도가 발단이 됐다. 초등학교 4학년 주일학생이 ‘뻥튀기’ 아저씨를 소개한 것이다. 여수에서 이사를 하고, 교회출석을 미뤄왔는데, 이 아저씨를 주일학생이 눈여겨 봤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아 주변과 이웃곳곳에 복음으로 메아리쳤던 시절이었다.
김 목사는 예배, 평화와 쉼 그리고 행복이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고 말했다. 성령께서 교회를 주관하셔서 기쁨과 소망이 있는 곳이 바로 김 목사가 추구하는 교회의 상이다. 여기에다 교회의 전원적인 환경도 김 목사는 목회방침이다. 김 목사가 전원적인 교회를 추구하게 된 것은 1990년에 여수애양원을 여전도회 회원들과 함께 방문하게 된 것이 동기가 됐다. 성탄절 맞이해 위문차 양로원을 방문했다. 김 목사는 당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80여명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고, 여전도회 회원들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김 목사 혼자 방으로 들어섰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 분들중 한분이 존귀한 목회자가 오셨다며 성령께서 꿈을 통해 가르쳐주셔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밝혔다.
“그들은 손양원 목사님께서 가르쳐 주신 ‘세상 사람 날부러워 아니하여도’라는 찬송을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모두 한 맘으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셨습니다.” 각본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들은 또, 로마서 12장을 한 목소리로 암송을 했다. 위문이 아니라 위로를 받고, 신앙생활에 정진하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김 목사는 전원교회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됐다. 김 목사는 무엇보다 손양원 목사의 목회철학과 사상에 대해 공유하는 특별한 날이었다.
“저의 취미 가운데 수석을 모으고 감상하는 것입니다.” 개척 초기에 성경공부를 함께하던 교인들 중에 한 사람이 전주천에서 주워온 돌이라며 김 목사에게 전해준 것이 계기가 돼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당시 그 수석에는 쵸콜렛 색상에 물개한마리가 담겨져 있어 김 목사의 관심을 끌었다. 평소에 차분하고 지적인 요소를 추구하던 김 목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취미의 발단이 됐다. 이후에 김 목사는 목회를 위한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담은 수석에 30년의 세월을 이어왔다. 특별히 운동이나 사나행 등의 취미가 없었던 김 목사에게는 기도와 명상 그리고 운동까지 겸할 수 있는 취미였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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