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가르쳐 주는 삶의 규칙, 세 가지/에베소서5:8-14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나의 나쁜 습관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쁜 습관은 내가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장애인을 완벽하게 고쳐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그의 영혼은 완벽하다. 그의 몸은 잠깐일 뿐이다.”
나는 하나님께 인내를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인내는 긴 고통의 산물이다.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행복을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너에게 축복을 주었다. 행복은 너에게 달려있다.”
나는 하나님께 고통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고통은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나에게로 더 가까이 오게 한다”
이 글은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규칙에 있어서 하나님의 규칙과 인간의 규칙이 종종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성서는 종종 인생을 경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에는 늘 규칙이 있습니다. 이 규칙을 벗어나면 아무리 위대하고 훌륭한 성과를 이룩한 선수라고 할지라도 결코 영광의 메달을 목에 걸 수 없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훈련을 하는데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규칙을 지키면서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14절'에서 바울은 신자들이 삶의 경기를 올바르게 치를 수 있도록 도와 줄 매우 엄격한 세 가지의 규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규칙들을 빛과 어두움, 선한 것과 악한 것,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1.빛과 어두움 바울은 신자는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한다고 말합니다. 이 규칙에 담긴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빛이 아니라 어두움 속에 살아가면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을 갖게 될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습니까? 어둠 속에 있으면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아무런 안전한 기반도 없습니다. 매사에 비틀거리고 충돌합니다. 머뭇거리고 두려움에 차 있게 됩니다. 시력의 기능이 정지되어 결국 땅 속의 두더지처럼 맹목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생산성이 현저하게 저하됩니다. 우리가 행하려는 애쓰는 모든 일이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보다는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빛 속에 살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빛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방향감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 속에서 우리는 안전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빛 속에서 우리는 매사에 비틀거리지 않고 온전히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 속에서 비로소 두려워하지 않고, 사물을 잘 인식하고 우리의 일들을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음행은 어두움 속에서 은밀하게 진행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탐욕이 운동을 시작합니다. 우리사회의 모든 부정과 비리는 사회가 투명하지 못하고 일처리가 공개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독교적 삶의 첫 번째 규칙은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빛 속에서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빛 가운데 일어나고, 양육되고, 사랑받고, 훈련된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아주 단호하게 오직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명령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서 빛의 자녀답게 행동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바울이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거론하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35-36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빛이 있는 동안에 다녀라. 어둠이 너희를 이기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너희는 빛이 있는 동안에 그 빛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어라.”
우리는 규칙을 따라 삶의 경기를 하고, 규칙을 따라 정정당당하게 이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결단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오늘부터 우리 빛의 자녀로 살아갑시다.
2. 선한 것과 악한 것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하여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두 번째 삶의 규칙은 “선하고 정의롭고 진실한”(엡5:9)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규칙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인간 서로가 행복하고 서로가 번영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고 선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행동을 행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수행합니다.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 자신을 섬기지 않고 남을 섬기는 행동인 정의를 행함으로서 그 책임을 수행합니다. 또 순수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영광도 추구하지 않는 이타적인 동기에서 행하는 진실을 행함으로서 우리 모두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합니다.
악을 행한다는 것은 이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불순한 이도를 가지고 행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결과도 악한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순수하지도 않고, 자신의 권리만을 고집하고, 탐욕스럽고, 나태하며, 교만하고, 자신의 명예와 영광만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선하고 정의롭고, 진실한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선하고 정의롭고, 진실한 삶은 인생에 분명한 목적의식과 방향감각을 줍니다. 또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때문에 우리가 선하고, 정의롭고, 진실한 것에 우리의 삶의 초점을 모으지 않는다면 우리는 헌신적인 기독교적 삶의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불쾌하게 하는 것 세 번째로 에베소서 9절에서 바울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십시오”하고 말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일이 기독교인이 삶에서 실천해야 할 또 하나의 규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즐거움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그 행동 하나 하나가 하나님을 기쁘시기 하는 일인지 아니면 아닌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하고 그렇지 않은 행동은 말끔히 배격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1944년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영국의 육상 선수 에릭 리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에릭 리델은 어린시절부터 선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특별한 달리기 재능을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달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나는 느낀다”고 종종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달리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느낄 때마다 그는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동할 때마다 참 신기하게도 그것이 자신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의 순수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삶의 풍경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4.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좋은 대로 행하라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기독교인이 살면서 실천해야 할 훌륭한 삶의 규칙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둠이냐 빛이냐? 악이냐 선이냐? 하나님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냐? 이 선택의 요청 앞에서 기독교인은 빛과 선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규칙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커다란 도움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규칙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꾸준한 염습을 통해서만 참된 신앙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어디에서 살고 있든지, 우리가 그 무슨 기독교 공동체의 구성원이든지 이것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숱한 신앙의 여정을 통과함으로서만 훌륭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규칙들을 따르는 것을 넘어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도록 하는 것입니다. 탁월한 축구선수들을 열심히 모방함으로써 서서히 훌륭한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부단히 노력함으로써 참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선하고 정의롭고 진실한 것을 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와 정의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회의 지도자였던 성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도덕 법칙을 매우 짧고 도발적인 문구로 요약했습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좋은 대로 행하라”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빛 속에 살아가십시오. 정의를 행하십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오” 우리는 이 세 가지 규칙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