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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극동방송 전주운영위원장 옥용호장로

153뉴스 tv 2020. 4. 22. 01:5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그 약속의 말씀대로 선대(善待)해 주신다고 시편 저자는 고백한다. 따라서 우리가 받을 만한 가치가 없어도 그보다 더욱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시고 선대하신다.

 

전북극동방송 전주운영위원장 옥용호 장로(전주푸른초장교회). 그는 하나님의 은총은 약속과 비교해 볼 때 가장 잘 드러나며, 마치 샘물에서 흘러 나오는 것처럼 우리들에게 주어진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옥 장로는 자신의 삶에 대해 고난이 축복의 통로가 됐다고 밝힌다. 그는 “제가 겪은 고난이 저에게 유익이 됐다”며 “고난 당하기 전에 그릇 행하였으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20여년 전, 옥 장로는 후배의 간곡한 보증 요청에 허락하고 보증을 서 준다. 하지만 이 보증이 옥 장로의 삶에 가시밭길이 될줄 몰랐다. 옥 장로는 “그당시는 암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고난이 나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축복의 통로가 됐다”고 밝힌다.

 

-. 전북극동방송 전주운영위원회가 출범됐다. 각오는.

“지난 2월 13일 전주운영위원회가 창립됐다. 36가정이 출발했다. 초대위원장으로 제가 섬기게 됐다. 전주운영위는 전북극동방송을 후원하는 일이며, 운영위원들의 친목을 도목한다. 여기에다 회원들 간 삶과 신앙 등 서로 기도하며 격려하면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펼쳐가는 일이다. 앞으로는 전북극동방송을 운영하는 부문에 큰 힘이 되고 싶다. 가장 앞장서는 전주운영가 되고 싶다.”

 

-. 전북극동방송을 언제부터 섬겼는지.

“익산시청에 근무하면서 극동방송을 알게 됐다. 익산운영위가 조직되기 전에 소통이 있었다. 그러다가 익산운영위 부위원장으로 섬기게 됐다. 10여년 됐다. 사실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10여년 동안 익산운영위가 중심이 돼 전북극동방송 개국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협력했던 지난 시간들이 기뻤고 소중하다. 이어 군산운영위가 조직됐다. 하지만 전주가 전북의 중심이면서 전북극동방송 개국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다. 전북극봉방송 개국을 위해 헌신한 조만섭 장로님, 임석삼 장로님 그리고 현재 운영위원장을 맡고계시는 심순택 장로님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전북극동방송 개국이 이뤄졌다. 이분들의 역할으로 인해 개국이 앞당겨졌다고 생각한다.”

-. 엘림엘이드조명 사업에 대해.

“공직에 재직하면서 극동방송을 후원하는 일에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물질에 따른 헌신하는 것에 어려움이 잇따랐다. 사업을 하며 후원을 하는 것과 공직에 재직하며 후원하는 차이가 많았다. 엘림엘이드조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통로이다. 2015년도에 법인을 설립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관급자재를 생산해 조달청에 납품하는 사업이다. KC인증이나, 친환경인증, 전자파 등 준비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인증을 받고, 이후에 납품해야 한다. 지금은 수익창출이 일어나고 있다.”

-. 교회출석은.

“아내 오순덕 권사를 만나 결혼하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정읍제일교이다. 예배 시간에 장남을 보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큰 아이가 돌이 지나고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보호가 필요했다. 그때 장남을 보호하기 위해 교회에 출석했다. 제일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도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도청으로 전근하면서부터는 효자동에 소재한 기장측 광림교회를 출석했다. 1990년도에는 사랑나눔교회 개척멤버로 참여했고, 8년 5개월여 동안 교회를 섬겼다. 또, 푸른초장교회는 12년 동안 섬기고 있다.”

-.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사연에 대해.

“제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1997년도 1월 2일 새벽이었다. 신년집회에 참석하게 된 원인이 있었다. 1996년도에 지인 후배의 요청에 의해 보증을 서줬다. 그때 그 후배 사업이 부도가 났다. 봉급 압류 등 직장생활의 어려움과 가정생활에서도 힘이 들고 갈등이 많았었다. 이때 완주에 소재한 벧엘기도원 신년집회를 참석했다. 사실 지푸라기도 잡야겠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 집회에서 사도행전 2장 초반부에 기록된 그 말씀대로 ‘성령의 불’ 체험을 가졌다. 곧이어 3월에 광림교회에서 열린 신년집회에서도 동일한 체험을 가졌다. 성령의 강력한 힘이었다. 사람의 생각과 계획으로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마가다락방 사건이었다, 성령체험을 하게되면 달라진다.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게 된다. 분명하고도 확고한 신앙정체성이 이뤄진다. 삶과 신앙에 변화가 있다.”

-. 고난이 유익이 됐다는데.

“고난이 유익이 되었다. 그때 후배의 보증을 서주지 않았더라면 제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 고난이 있었기에 주님을 만나게 됐다.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이 제 삶의 적용이 됐다. 사도행전 2장 1-5절 말씀이 그대로 적용됐다. 120명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경험한 사건이 제 삶에도 임했다. 그당시 무늬만 기독인이었다. 선데이 교인이었다. 고난이 오히려 축복의 통로가 됐다. 지금은 감사할 따름이다. 도청에 근무할 시기였다. 이후 제가 2015년도에 장로 장립을 받았다. 후배는 2-3개월 후에 장로 임직을 받았다. 보증 서 준 후배도 지금은 장로로 세워져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때의 빚은 제가 감당해왔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아무도 모른다. 후배는 광선교회를 섬기고 있다. 사실 용서라는 단어가 쉽지는 않다. 남을 용서한다는 것이 삶에 적용되기 쉽지않지만 그 용서가 나의 삶에 축복으로 다가온다. 그 고난 가운데 아내 오순덕 권사의 내조가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임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