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창조과학/이국진칼럼

꿈을 꾸고 계십니까?

153뉴스 tv 2018. 10. 4. 20:29


    

1963년 워싱턴 광장에 몰려든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마르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님이 했던 연설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연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1863년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포했지만, 100년이 지난 1963년의 상황에서는 여전히 흑인들이 차별을 받고, 무시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외쳤다.


그의 연설문 하나하나가 다 감동적이지만, 그 가운데 한 구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그로부터 약 50년 정도 지난 지금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적인 상황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꿈이 많이 현실화되어 흑인 대통령까지 탄생시키기까지 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은 열악한 현실 속에서 그리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좌절하지 않았고 꿈을 가졌고 그리고 그 꿈을 하나씩 이루어간 것이다.


꿈을 꾼다고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꿈을 꾸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꿈을 꾸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꿈을 꾸는 사람은 현재의 모습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을 위해 하나씩 하나씩 무엇인가를 해내는 사람이다. 반면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현실의 괴로움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성경에서 소망을 표현할 때 항상 같이 따라오는 단어가 인내이다.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2-3)라고 말했다. 소망을 가진 자는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이 세상은 그렇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현실 속에서 미래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자들에 의해서 움직여왔다. 건축가는 허허벌판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으로 집과 빌딩을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을 지난 사람이다. 요리사는 재료들 몇 개를 보고서 그것으로 맛있는 음식을 그려낼 줄 아는 사람이다. 음악가는 오선만 가지고도 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청년이란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이 두렵고 무엇인가 도전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일 수 없다. 만일 꿈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로 있는 공동체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만일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두렵고 그저 현상을 유지하는 것만이 가장 편하다고 느껴진다면 차라리 보다 더 젊은이들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좋다.


모세가 정탐꾼들을 가나안 땅에 보냈을 때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은 강대한 민족이고 성읍은 견고하므로 우리는 능히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13:28-33). 이들은 가장 건장한 사람들 중에서 선별된 사람이었겠지만 그들의 생각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다. 이들은 하나님을 계산에 넣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으며 꿈을 잃지 않았다.


결국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미래는 꿈꾸는 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져간다. 부모는 꿈을 꾸는 사람이다. 갓난아기의 모습에서 부모는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는 말도 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스스로 먹을 것을 먹을 수도 없다. 아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부모는 실망하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서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과 꿈속에서 아이들은 자란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의 꿈 때문에 산다. 하나님은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하고 죄악을 행하는 우리를 아무 쓸데없다고 포기하시지 않으셨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셔서 함께 천국의 복락의 누릴 것을 고대하시며 하나님은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며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국진 목사(꿈이 여물어 행복이 꽃피는 예수비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