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주 박사의 건강학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 : 32)
신경질이나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대개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현대는 상처의 시대다.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다"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실감날 정도로 사회의 구석구석이 상하고 병들어 이른바 상처투성이다.
심지어는 가정까지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이 아닌
"스트레스가 쌓이는 곳"으로 여기는 직장인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상처받은 인간이 토해낸 상처의 파편이
가정과 사회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인간은 상처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존심의 아성이 더욱 견고해진다는 점이다.
마치 토치카에 홀로 사는 사람과 같다.
그 자존심이 때로는 우월감으로 때로는 열등감으로 표출된다.
사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우월감에서 나온 자기과시욕은 깊게 뭉쳐진 열등감의 표현이며
얼등감 역시 자신의 존재를 절대시하는 교만심에서 비롯된다.
이런 의미에서 열등감은 겸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이 상처를 받을수록 우월감과 열등감이 깊어지는 것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가 습관성 분노의 노예가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지에는 보통사람에 비해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20%가량 높다는 듀크 의대팀의 연구결과가 나와
습관성 분노가 일시적으로 기분을 잡치게 하는 기능만이 아닌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사실이 보도된바 있다.
이는 마음과 신체의 건강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화를 냄으로써 상대방에게 인격적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전에 자신의 상처가 더욱 깊어짐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심하게 화를 내는 사람의 신체는
유명한 권투선수의 강편치를 맞는 것 같은 타격을 받는다고 한다.
화를 참고 살히면 병이 된다는 속설이 있어 직장이나 가정에서
분별없이 화를 폭발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마음속에 있는 갈등이나 분노를 표현하고 발산하는 것은 정신건강의 비결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어디까지나 창조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화를 내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며 심신을 망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화를 냄으로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확대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실 주관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의 표현은 교육적 의미에서도 효과가 없다고 한다.
특히 분노와 증오의 감정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아이에게 매질을 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아이의 장래를 위한 사랑의 표현인지
아니면 부모의 단순한 화풀이인지가 명확하게 전달된다고 한다.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폭발시키는 것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일을 성취시킬 수 있을는지 모르나 상대의 마음에서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성경은 화내는 것을 금지시킨 것이 아니라 한 템포 늦추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러면 언제까지 늦출 것인가.
그것은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들 때까지를 의미한다.
내가 화를 내고 분노를 터트리는 것이 정말
상대방의 인격과 신앙을 위해서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만 참으라는 이야기다.
이는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닌
상처투성이의 불쌍한 "환자"로 볼 때만이 가능하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사랑으로 상대방을 보라.
그는 나의 사랑과 섬김이 필요한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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