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양식/믿음의 선진

[스크랩] [찰스 피니] 미국 대부흥을 가져온 그릇

153뉴스 tv 2007. 1. 19. 03:49


찰스 피니(A.D. 1792-1875)는 19세기 미국 대부흥을 가져온 그릇이다.

그는 부흥의 의미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이고, 죄인들에게는 과거를 뉘우치는 것임을 보았다. 퇴보한 교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주의하여 기울이도록 일깨우고 교정하였다. 믿는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고 확대되는 것과 그들의 생활 안에서의 영광스러운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이 죄인들을 굴복시킨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1792년 8월 29일 코네티컷 주 리치필드 군의 와렌이란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 소설가의 소설을 애독하셨던 아버지는 소설 속의 인물의 이름을 따서 내 이름을 찰스 그랜더슨이라고 지으셨습니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믿음은 별로 독실한 편이 못되었습니다.

나는 성장하면서 우리 집에서 기도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도 내 나이 29세 때 법률에 나오는 모세오경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사서 읽게 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문학 분야에 뛰어났고, 고전어를 연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지도해 주던 선생님의 권고로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들을 포기했습니다. 훗날 학교를 같이 설립하자는 그 선생님의 제안도 어머님의 병환으로 인해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길들이 막혀진 것 같았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들어선 그 법률가의 길에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대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나는 내가 죄인임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냉담한 척했지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어느덧 간절히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그러던 어느 날 구원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임을 깨닫고서, 이제 죄를 끊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한 결정을 내린 후로는, 별로 선하지 못한 의뢰인들의 법적 탈출구나 만들어 주는 일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변호사 일을 계속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 생각도 없었고, 그것이 어떤 것이든 세상적인 즐거움과 재미에는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반면 이 세상의 어떤 수고도, 죽어가고 있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음을 알리근 그 일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는 또 한 번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송 의뢰를 맡은 변호인으로서, 그분의 탄원을 사람들에게 호소하는데 나의 일생을 드리기로 말입니다.

나는 내가 맡은 그리스도의 소송에서 이기고자 하였고, 설교의 내용에 그 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눈에는 그리스도의 소송에는 능력있는 대변인이 참으로 드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호소하는 것처럼 어떤 변호사가 자기 소송 의뢰인의 무죄를 변호한다면, 단 한 건도 승소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묵상할 때면, 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한 제목을 택하곤 했습니다. 그런 후에 그 설교를 준비하면서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나아가 설교로써 넘치도록 쏟아놓곤 했습니다. 그러한 나의 설교는, 설교 내용이나 감상하며 설교자에게 칭찬이나 던져 주던 나태한 회중들에게 강력한 찔림이 되었습니다. 나는 설교를 통해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오고자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거나, 격렬한 반대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죄인들의 완악한 마음들이 부서져서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술집이 기도회 장소로, 호텔이 부흥의 장소로 돌변하고, 도시 전체가 회개의 물결에 휩싸이며, 지속적인 기도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반면에 끝까지 반대하던 자들 중에는 졸도로 죽거나, 침대 위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목사도 있었습니다.

강력한 복음 전파와 풍성한 기도에 힘입어 부흥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앤월프로 갔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술집을 경영하던 사람의 손에 교회 열쇠가 넘어가 있었습니다. 상황이 험악했지만, 나는 매일 이른 아침 숲속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그 상황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기도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는 힘차고 능력있는 설교를 할 수도 없었고, 나의 언변이나 지혜로는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설교를 통해 드디어 그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쏟아져 내리는 우박과 같은 강렬한 사랑을 쏟아부으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모임 장소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에반즈 밀즈, 앤월프, 가버너, 유티카, 로마... 가는 곳마다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주님께 돌아오는 부흥이 있었으며, 그 부흥 뒤에는 끊임없는 기도와 그를 통한 성령의 특별한 도우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부흥이 일어나자 무시 무시한 반대도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나와 내쉬 감독(나의 기도의 동역자)의 화상을 만들어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예배 모임중에 소란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음모와 거짓말과 거짓 보고가 난무했습니다. "그는 인간을 모두 악당이라고 부른다", "능력에 찬 부흥회라고 떠들지만 결과는 별로 없거나 전무하다", "젊은 개종자들을 분별없이 이용한다", "어중이 떠중이에게 연설을 하게 하며 난잡한 모임 속에서 기도들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비난에 대답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또 그럴 의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반대 세력을 진압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에, 오직 신뢰로써 나를 그분께 맡기고 그분의 약속을 붙잡고 한 곳만을 바라보며 전진해 나갈 뿐이었습니다. 나는 부흥을 위해서 그러했던 것처럼 반대에 대해서도 오직 그분께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반대자들의 공격을 뒤엎으셨고, 주요 도시들에 있는 교회 문들이 내 앞에 열리도록 나의 이름을 하나님의 일터로 널리 퍼지게 하셨습니다.

복음 사역을 시작한 지 15년째 되던 해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나에게 교수직의 제의가 들어왔는데, 나는 젊은 학생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 목적으로 그 제의를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의 설립자가 파산해버려 학교는 부채를 떠안게 되었고, 나 역시 그해 겨울 동안 나의 가족을 부양할 길이 없었습니다. 최후의 방법으로 나는 여행용 가방을 팔아서 그것으로 한 마리 암소를 사야만 했습니다.

가방을 팔던 그 날, 나는 하나님께 기도로 이 사실을 아뢰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겼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날아온 한 통의 편지에 200불의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돈을 보내준 형제는 그 뒤로도 몇해 동안 매년 600불씩 나의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학교의 부채도 만 이천 권이나 팔렸던 나의 저서 <피니의 부흥 강의>에 감명받은 영국인들에 의해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교수직을 수락한 뒤에도 나의 사역을 강의실에만 한정시키길 원치 않았습니다. 대학에서는 매해 겨울에 부흥회를 자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고, 나는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과의 맹세를 충실히 지켜왔으며, 부흥의 물결은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부흥사로서, 목사로서, 저술가로서, 교수로서 나를 쓰셔서 많은 영혼들을 그분께로 이끌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도구로 사용하심으로 수많은 죄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나 자신이나 지도 교수나 다른 목사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로지 성경을 나의 교본으로, 성령님을 나의 교사로, 기도를 나의 힘으로 삼았고, 따라서 그분의 사역의 놀라운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세기의 3/4에 달하는 나의 생애가 다하기까지 그분의 일은 계속되었으며, 주님의 일하심으로 50만 명의 영혼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왔습니다.

내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이끌어 준 것은 나의 지혜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나의 무지와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인도하심만을 간절히 구했고,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나를 친히 이끌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나는 이 모든 사역의 열매들을 그분의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게 다시 인생의 기회들이 주어진다해도, 나는 40여 년이 넘도록 이 부흥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인 이 일에 다시 쓰이고자 간절히 소망할 것입니다.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서

 

뉴라이프 /

출처 : 연수임마누엘교회
글쓴이 : 주님닮기원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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