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Sts. 103 Martyres Coreae) 축일: 9월20일
4대 박해
1.신해박해.辛亥迫害.1791년.윤지충 사건
1791년(辛亥, 正祖 15년)에 있었던 박해.
전라도 진산에서 윤지충(尹持忠)과 그의 외종사촌 권상연(權尙然)이 제사를 폐하고 신주(神主)를 불태운 이른바 진산사건(珍山事件)으로 인해 발생하였다.12월 8일(음 11월 13일)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수되고, 이승훈은 배교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직되고, 권일신은 유배가는 도중 사망하고,그외의 교우들은 배교하고 석방됨으로써 박해는 일단락 되었다.그러나 그 결과 서학서의 구입이 금지되고 또 이미 들여온 홍문관(홍문과)의 서학서도 불 태워지는 등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강화되었다.
2.신유박해.莘酉迫害.1801년.
1801년(신유년)에 일어난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 1800년(정조 24년) 6월(음) 천주교에 대한 비교적 온화한 정책을 써왔던 정조가 승하하자,모든 정세는 천주교와 남인에게 더욱 불리하게 되었다.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順祖)가 겨우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게 되고,대왕대비(大王大妃)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는 섭정이 되어 모든 정사를 마음대로 하기에 이르렀다.그런데 왕대비는 원래가 노론벽파(老論僻派)에 속해 있었으므로, 집권하게 되자 천주교도들과 남인 시파(詩派)를 일망타진하려 하였다.신유박해로 교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거의 사라졌을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교인들도 유배를 당했거나생명유지를 위해 산가벽지로 피신하지 않을 수 없어 거의 빈사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그러면서도 천주교회 는 그 후에도 전국적인 규모는 아닐지라도 크고 작은 박해를 끊임없이 받으면서,
신앙을 굳게 지켜나갔고, 선교사를 다시 영입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3.기해박해. 1839년(기해박해의 순교자들과 한국 천주교회 초기의 모습)
1801년에 일어난 신유박해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1839년(헌종 5년)에 이르러 다시 시작되었다. 1839년이 기해년이었기에,이 때의 박해를 흔히 기해박해라 한다기해박해 때에는 조선에 들어와 활약하던 앵배르(Imbert)주교와 모방(Maubant)신부 샤스탕(Chastan) 신부 등 3명의 불란서 선교사와 더불어 모두 114명 이상의 신자가 순교를 하였다.
기해년의 박해가 일어나자 앵배르 주교는 순교자들의 사적을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며, 자신도 곧 체포될 것을 예감하고 그는 정하상과 현석문에게 순교자의 사적을 면밀히 조사하여 기록하는 일을 계속하도록 명하였다. 이 일을 부탁받았던 정하상은 곧 체포되어 처형되었지만, 현석문은 숨어 다니며 교우들로부터 모아들인 기해박해 순교자들의 자료를 정리하고 기록하여 {기해일기}란 책을 완성하였다.
이 (기해일기)는 한동안 실전되었다가, 1904년경 당시 제8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된 뮤텔(Mutel)주교에 의해 한글본이 발견되어 이듬해인 1905년에 그대로 출판되었다.
이 (기해일기)에 의하면 당시에 순교한 사람이 모두 114명이 넘었다고 되어 있으나, 여기에는 78명의 순교사기만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해일기}는 그 사료적인 정확성이 입증되어 여기에 기록된 78명 가운데 69명이 1925년 7월 5일에 복자위에 올랐으며, 이들은 1984년에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순교자연구소www.rimartyrs.pe.kr)
4.병인박해.丙寅迫害.1866년-1873년
조선조 말기인 1866년(高宗 3년)에 시작되어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할 때까지 계속되었던 박해를 말한다.피로 얼룩진 한국 교회사를 통해서도 병인박해는 그 규모와 가혹함과 희생자의 수에 있어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박해였다. 이 박해의 주요 원인은 유교사상에 젖은 보수지배충의 서학(西學)에 대한 사갈시(蛇蝎視), 즉 천주교에 대한 이교도들의 증오심에서 발작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척사(斥邪)를 요구한 박해자들은 "천주교 신자들이 윤리 도덕을 무시하고, 아비와 임금도 안중에 없으며 죽음을 가장 영광스럽게 여기는 족속으로,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유인한다"고 하여, 동양윤리의 이단자요 모든 악의 전형으로 몰았다.위정자들은 또 신유년(辛酉年, 1801년)의 이른바 황사영 백서(黃飼永帛書) 사건을, 한 교인의 생각이 아니고 프랑스의 군사력을 끌어들이는 것은
천주교의 신조인 것처럼 몰아세워 보수적인 배외사상(排外思想)을 부추기는데 이용하였다.
(가톨릭대사전)
◆ 한국성인
한국 교회의 103명의 성인을 총칭하는 말이다. 103명 중 79명은 1925년에, 그리고 24명은 1968년에 시복(諡福)된 후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에 즈음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5월 6일 모두 시성(諡聖)됨으로써 성인품(聖人品)에 올랐다. 한국성인의 축일은 9월 20일이고, 축일의 명칭은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바오로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이다. 103명의 성인 중에는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 10명의 선교사(3명의 주교와 7명의 신부)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국적이 비록 프랑스일지라도 그들은 한국의 선교사로서, 한국인의 구원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바쳤으므로 그들 역시 당연히 한국 교회에 속하는 성인들이다.
이상 10명의 선교사를 제외한 93명을 순교시기로 구별할 때 1839년 즉 기해박해 때의 순교자가 67명, 1846년 즉 병오박해 때의 순교자가 9명, 1866년 즉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가 17명이다.
기해박해의 순교자는 이호영 베드로, 정국보 프로타시오, 김아기 아가다, 박아기 안나, 이 아가다, 김업이(金業伊) 막달레나,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 한(韓)아기 바르바라, 박희순(朴喜順) 루시아, 남명혁(南明赫) 다미아노, 권득인(權得仁) 베드로, 장(張)성진 요셉, 김 바르바라, 이 바르바라, 김 로사, 김성임(金成任) 마르타, 이매임(李梅任) 데레사, 김장금(金長金) 안나, 이광렬(李光烈) 요한, 이영희(李英喜) 막달레나, 김 루시아, 원귀임(元貴任) 마리아, 박 큰아기 마리아, 권희(權喜) 바르바라, 박후재(朴厚載) 요한, 이정희(李貞喜) 바르바라, 이연희(李連熙) 마리아, 김효주(金孝珠) 아녜스,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유진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 허계임(許季任) 막달레나, 남이관(南履灌) 세바스티아노, 김 율리에타, 전경협(全敬俠) 아가다, 조신철(趙信喆) 가롤로, 김제준(金濟焌) 이냐시오, 박봉손(朴鳳孫) 막달레나, 홍금주(洪今珠) 페르페투아, 김효임(金孝任) 골룸바, 김 루시아, 이 가타리나, 조(趙) 막달레나, 유(劉)대철 베드로, 조증이(趙曾伊) 바르바라, 한영이(韓榮伊) 막달레나, 현경련(玄敬連) 베네딕타, 정정혜(丁情惠) 엘리사벳, 고순이(高順伊) 바르바라, 이영덕(李榮德) 막달레나, 김 데레사, 이 아가다, 민(閔)극가 스테파노, 정(鄭)화경 안드레아, 허(許)임 바오로, 박종원(朴宗源) 아우구스티노, 홍병주(洪秉周) 베드로, 손소벽(孫小碧) 막달레나, 이경이(李瓊伊) 아가다, 이인덕(李仁德) 마리아, 권진이(權珍伊) 아가다, 홍영주(洪永周) 바오로, 이문우(李文祐) 요한,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 김성우(金星禹) 안토니오 등이다. 이들 중에는 1839년을 전후하여 이미 1838년에 순교한 이도 있고, 또 1840년과 1841년에 순교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기해박해’의 순교자라고 할 때 이들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병오박해의 순교자는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를 위시하여 현석문(玄錫文) 가롤로, 남경문(南景文) 베드로, 한이형(韓履亨) 라우렌시오, 우술임(禹述任) 수산나, 임치백(林致百) 요셉, 김임이(金任伊) 데레사, 이간난(李干蘭) 아가다, 정철염(鄭鐵艶) 가타리나 등이다.
병인박해의 순교자는 유정률(劉正律) 베드로, 남종삼(南鍾三) 요한, 전장운(全長雲)요한, 최형(崔炯) 베드로, 정의배(丁義培) 마르코, 우세영(禹世英) 알렉시오, 장주기(張周基) 요셉, 황석두(黃錫斗) 루가, 손(孫)자선 토마스, 정(鄭)문호 바르톨로메오, 조화서 베르로, 손(孫)선지 베드로, 이명서 베드로, 한원익(韓元益) 요셉, 정(鄭)원지 베드로, 조윤호 요셉, 이윤일 요한 등이다.
한국성인들의 신분과 직업은 아주 다양하다. 신분으로 말하면 양반, 중인, 상민 등이 골고루 섞여 있어 승지(承旨)나 선공감(繕工監)과 광흥창(廣興倉)의 관리, 군인, 궁녀 등이 있는가 하면, 상업, 농업, 약국, 인쇄, 서사업(書寫業), 심지어는 짚신을 삼고 길쌈과 삯바느질 등으로 생계를 간신히 유지한 사람들이 많다. 집안 형편은 거의가 가난하고 궁핍한 편이었으나 최경환, 김효주, 유진길, 김제준, 정화경, 김성우, 임치백 등과 같이 부유한 편의 집안도 있었다.
한국성인 93명 중 성직자는 유일하게 김대건 신부뿐이고 나머지 92명은 모두 평신도이다. 그러므로 한국성인의 교회활동과
순교는 그 자체가 한국 교회 평신도상이요 평신도적 영성(靈性)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가톨릭대사전)
'영혼의 양식 > 기독교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경의 절기와 달력 (0) | 2007.01.17 |
---|---|
[스크랩] 사도신경 이해하기 (0) | 2007.01.17 |
[스크랩] 성경개관 (0) | 2007.01.17 |
[스크랩] 죽음 앞에서 남긴 마지막 말 (0) | 2007.01.17 |
[스크랩] 신구약 중간사 (0) | 2007.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