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특별한 점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슬플 때에도 기쁠 때에도 기도의 사람이었다. 기도는 그의 삶이었으며 호흡이었다. 그는 또, 우선 출중한 음악가였다. 악기를 연주하되 음악치료를 할 수 있을 만큼 탁월한 음악가였다. 게다가 그는 새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형식의 노래가 아닌 진리의 말씀 앞에 깨달아진 신앙고백을 담은 찬양이 바로 새 노래다.
여기 다윗을 닮은 그리고 삶 속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 전주시장로연합회 회장 이한진 장로. 이한진 장로의 삶과 신앙에는 언제나 음악과 함께했다. 지난 10일 전주중부교회(담임 박종숙 목사)에서 제22회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추대된 이한진 장로는 40여년 공직생활을 거치면서 “노래는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청춘의 샘물”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무원 세계 뿐 아니라 전북지역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인정하는 ‘가수’이다. 무엇보다 이 장로는 “다윗은 다윗은 음악을 즐기고 음악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 음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사용했다. 그는 또한 탁월한 작곡가였다”며 “하나니께서 주신 재능을 가지고 부르심을 받는 그날까지 찬양으로 영광을 올려드리고 싶다”고 고백했다.
약관의 나이에 진안군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장로는 전주시립도서관장, 덕진구청 세무과장 등을 거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능으로 가는 곳마다 즐겁게 분위를 전환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곤 했다.
특히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고조 시키는 역량을 담당했던 이 장로는 찬송가에서부터 일반 가요까지 장소에 따라 노래를 부르며 좌중을 이끌어 왔다. 그는 100-200곡의 노래를 기억하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감당해냈다. 또, 재치 넘치는 위트와 유머, 성대묘사를 구사하면서 대중들을 웃기고 울기도 했다. 이 장로는 실제로 정식 음반을 내고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에 등록된 회원이다. 1998년에는 ‘월드컵 전주’라는 테이프와 CD를 제작해 보급했다. 직접 작사와 작곡까지 한 이 노래는 전주의 맛과 멋의 홍보와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도하며 소망했다. 이에 앞서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고향의 포근한 향수를 담은 ‘전주의 모정’이라는 음반도 냈다.
그의 학창시절 꿈은 성악가이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는 지역과 지역민을 섬기는 공직생활의 길을 걷게 하셨다. 꿈이 많았던 그의 또다른 비전은 토크쇼 진행자이었다. 이런 그의 재능을 그의 차남(이명백씨)이 물려 받아 MBN방송 1기 개그맨 공채로 합격해 주가를 올리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성대 묘사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 장로의 섬기던 사역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바로 청소년합창단이다. 92년 전주시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모집해 전국성가경연대회에 참가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됐다”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이 장로에게 또 다른 기쁨은 85년 중부교회에서 ‘휨노이스중창단’을 창단해 단장을 역임한 것이다. ‘신령한 노래’라는 뜻으로 중부교회 김동건 원로목사의 지원을 받으며 창단됐다. 초기에는 4명이 참가해 12명으로 늘어났다. 2000년도에는 아버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어버지성가대를 창단해 섬겼다. IMF를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버지들을 위로하기 위해 출발했다. 이 성가대는 3-40명의 대원이 참여해 찬양으로 섬겼다.
이 장로의 사역은 ‘전주시청기독신우회’ 출발과 함께 꽃을 피웠다. 전주시청 개칭 52년 만에 신우회가 설립되는데 그는 산파역할을 감당했다.
다윗은 탁월한 작곡가였다. 그가 지은 수많은 시편들에 곡을 붙여 노래했던 사람 다윗. 그래서 그는 성전을 지을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수천 명의 오케스트라와 성가대를 세워 찬양하게 했다. 목에 성대결절이 생긴 뒤로는 이 장로는 2000년부터 익힌 아코디언을 가지고 동호인들과 함께 각 지역 공원 등을 찾아가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또, 섹소폰도 수준급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여기에다 레크레이션지도자, 웃음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90년에는 기독음대 지휘과에 입학해 지휘하는 능력도 배양했다. 지휘는 중2 시절 여름수련회에서 지휘를 시작하면서 출발했다. 또, 2008년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신학도 전공했다.
부귀중앙교회가 모교인 그에게 어머니 손종임 권사(소천)는 신앙의 멘토이었다. 일찍 소천한 아버지 역할까지 감당하며 그의 어머니는 축복의 마중물 역할을 다했다. 그 힘든 시기에서도 그의 어머니는 6남매(3남 3녀)를 모두 성실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키워냈다. 이 장로에게 아내 유정분 권사도 잊을 수 없는 신앙의 동지이며 내조역할을 견실히 해냈다. 40여년 동안 완산구 행정지원과장을 끝으로 건강한 정년퇴임을 할 수 있도록 내조한 것도 유 권사의 기도와 섬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장로의 장남인 현백이 목사(서울성산교회 수석목사)가 6대째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장로는 정년퇴임 후에 나눔요양병원(행정부원장)에서 근무하며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섬기며 나누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또다시 꽃피우고 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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