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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 할아버지의 얘기

153뉴스 tv 2006. 12. 27. 17:30

 

*이 글은 지난 9월의 얘기입니다.

 

김태준할아버지의 얘기다.
할아버지께서 터미널에 나타나신 것은 3개월 전부터이다.
고향은 돌산이라고 하셨다. 연세는 70세이다.
수원에서 살다가 IMF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에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자녀들 간의 소식이 끊긴지 7-8년.
그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생활을 지내왔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금강원에 입소시키기 위해 동사무소의 복지담당 정명숙 주사와 중앙파출소서에서 서류를 준비했다.
"잘 수 있고, 먹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할아버지의 고백이었다.
바쁜 일이 있어(사실은 기도회 시간이었다.) 복지담당 분께 의탁하고 공동체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공동체에 들어서자 전화벨이 울렸다.
복지담당 정주사님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밖으로 나가셔다는 얘기다.기도회를 마친후 터미널로 향했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금강원 직원들만 고생을 시켰다.

그 이후로 술에 취한 채 터미널 등나무 쉼터에서 노숙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어제 백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상처 부위를 치료하고 잠시동안였지만 응급실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 드렸다.
영양제를 주사하고 밖으로 모시고 나오는데 바지에다 오줌을 실례하셨다.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감추는 데 급급하셨다.
차량 뒷자석에 모시고 터미널로 행하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었다.
"거지 나사로"는 '주님'께 향한 믿음이 있었는 데.....할아버지께서는 믿음이 없으니.....

그후, 2주 만에 터미널 등나무 아래에서 할아버지를 다시 뵈었다.
모습이 더욱 췌체해져 금방이라도 쓰러지려는 상태였다.
"목사님! 제발 저를 살려 조세요."
2-3주 전 만해도 기세당당 하셨던  할아버지이셨는데.

할아버지의 건강상태가 악화돼 백병원으로 모셨다.
응급실에 입원을 시켜 드렸다.
금강원 담당자와 전화통화가 이뤄지고 그들이 할아버지를 모시로 왔다.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말을 남기고 할아버지는 금강원 직원과 함께 출발하셨다.

지난 5일 광주에 업무차 광주로 향했다.
그러나 업무상대자와 시간약속이 엇갈려 곡성인터체인지에서 여수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내려오는  길에 화양면 창무 마을에 소재한 금강원에 들렸다.
김태준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할아버지는 예상 밖으로 밝고 건강하신 상태였다.
"죽을 때까지 여기에서 살겠습니다."
"왜? 이제 이런 좋은 곳을 이제야 소개해 주었느냐?"라는 할아버지의 반문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30여 분간 얘기를 나누다가 공동체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는 감사가 넘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