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애 목사는 “달란트도 없고 나이도 많은 자에게 청소년 사역을 맡기셨다는 것 자체가 청소년들의 세상을 향한 외침이고 울부짖는 소리”라고, 청소년 사역에의 부르심을 증거한다.
십대를 향한 짝사랑 15년째
김성애 목사의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아래 마치 정해진 것처럼 시작됐다. 목사안수를 받고 사역한지 올해로 5년째가 되는 김 목사는 “안수받기 훨씬 전부터 청소년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중고등학교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길을 지나가게 되면, 그들을 한참이나 지켜봤단다. 의식적으로 ‘저들을 봐야지’ 했던 것은 아닌데, 길을 지나다 보면 학생들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터벅터벅 실내화 주머니를 흔들면서 초점없는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나오는 그들을 보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이 있어야할 나이에 왜 저럴까’하는 불쌍한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흔히 볼 수 있는 하교길 학생들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하니, 청소년 사역은 김 목사가 걸어야할 당연한 길이었었나 보다.
이후 김 목사는 10년 동안 ‘청소년’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곳은 어디라도 찾아다녔다. 예배인도자학교를 비롯해 큐티학교, 청소년지도자학교, 청소년영상매체 등등…
김 목사는 “‘청소년’이라는 말만 붙어있으면 쫓아 다녔다”며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단어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때로는 ‘젊은이들이 모인 곳에 웬 아줌마?’라는 의아한 눈초리도 있었지만, 김성애 목사는 “누가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지 않고, 10년간 독학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청소년 사역을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컸지만, 김성애 목사는 목회자가 될 생각을 해 본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목회자로 부르심에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희미하게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마음’이 그것이었다.
김 목사는 “옛날 같으면 뒷방에서 손자나 볼 나이에 왜 내게 이 사역을 맡기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며 “그러던 중 ‘네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내 양들을 간수해 줄 수 없겠니? 그게 단 한 명일지라도’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됐다”고 당시의 감동과 부르심을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동안 목사 안하겠다고 버텨온 게 부끄러워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55세 때부터 시작된 청소년에 대한 짝사랑이 10년 만인 2001년에 목사안수를 받자마자 십대교회를 설립한 것으로 이어지게 됐다.
꿈에 그리던 ‘쉼터버스’
김성애 목사는 목회를 시작한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청소년을 향한 열정과 꿈은 시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화제가 됐던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버스도 청소년들을 위한 수많은 꿈 중에 하나이다.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버스는 가출한 학생이 하룻밤 쉬었다가 집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든 것이다.
김성애 목사는 “처음 가출한 아이들은 부모가 무서워서 집에 가고 싶어도 못 들어간다”며 “이들이 상습적으로 가출하지 않도록 쉼터버스에서 하루 저녁 재워주고, 결과적으로는 이들을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역할까지 감당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오랫동안 김성애 목사의 마음에 품고 있던 이 꿈은 올해 초 두 사람의 동역자에게 전해지면서 열매를 맺게 됐다. 유스미션 대표 원베네딕트 선교사와 아들인 가수 김장훈씨가 바로 그들이다.
김성애 목사는 “김장훈 형제(그는 아들을 이렇게 불렀다)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청소년 이동쉼터에 대한 꿈을 얘기했고, 원베네딕트 선교사와도 이 비전을 나눴다”고 전했다.
김 목사의 꿈을 듣고 같은 마음을 품게 된 원베네딕트 선교사는 유스미션 기도모임 때 이 비전을 청소년들에게 나눴고, 이를 위한 헌금 백만원을 준비하게 됐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청소년 캠프 때 특별헌금과 십대교회 헌금, 김장훈씨의 헌금이 모아져 이동버스가 마련됐다.
김 목사는 쉼터버스 사역이 사회사업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 중심에서 기도하면서 이끌어 갈 계획이지만, 표면적으로는 김장훈씨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사역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려면 김장훈씨가 직접 나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장훈 형제는 앞으로 전국각지마다 쉼터버스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며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대중가수로 이름을 얻게 한 이유에 대해 이러한 일을 감당하라고 그렇게 해주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아들을 ‘형제’라 부르며 동역하는 김성애 목사는 “엄마로서는 빵점일 수 있겠지만, 내가 아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한 가지라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부분은 숫자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는다”며, 하나님께 아들을 맡기면서도 아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황무지에서 귀한 열매 거두다
올해로 5년째 십대교회를 이끌고 있는 김성애 목사는 누구보다 청소년을 사랑한다고 자부하지만, 또한 이 길이 황무지 같은 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열망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망했던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성애 목사는 이제 조금씩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희망을 이야기 한다. 도무지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아이들이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뚜렷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변화들이다.
김성애 목사는 “4년 전부터 아이들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의 모든 사역에 대해 하나님 앞에 보상받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십대교회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고3을 졸업한 13명이 ‘교사’로 헌신했다. 이들은 모두 십대교회에서 세례받고 양육받은 소중한 1세대 아이들이다.
김 목사는 “북한 선교를 마음에 품고 북한학과에 들어가는 아이, 기필코 의사가 돼 오지로 나가 복음을 전하겠다는 아이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아무리 사랑을 퍼부어도 반응이 없고, 찔러도 미동조차 않던 아이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것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감격을 전했다.
청소년 사역, 징검다리 되어
김성애 목사는 소수일지라도 알곡을 줍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를 길러내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이러한 소망을 위해 자신은 기꺼이 징검다리가 될 각오가 되어 있다.
김 목사는 “도저히 청년사역을 할 수 없는 나이에 이 사역을 하는 것은 내가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라며 “청소년 사역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내 등을 밟고 건너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효과적인 청소년 사역을 위해서 김 목사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청소년들이 마음껏 자기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청소년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김 목사는 “전국에 있는 청소년들이 자신들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맘껏 본인들의 생각과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청소년들끼리 모여 대화를 나눌 때 자기 속에 있는 꿈이 현실로 자라나는데, 그러한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이 꿈에 대해 “십대교회도 쉼터버스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꿈꾸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면서 “꿈을 꾸며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에게는 그분의 대안이 있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십대를 향한 짝사랑 15년째
김성애 목사의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아래 마치 정해진 것처럼 시작됐다. 목사안수를 받고 사역한지 올해로 5년째가 되는 김 목사는 “안수받기 훨씬 전부터 청소년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중고등학교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길을 지나가게 되면, 그들을 한참이나 지켜봤단다. 의식적으로 ‘저들을 봐야지’ 했던 것은 아닌데, 길을 지나다 보면 학생들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터벅터벅 실내화 주머니를 흔들면서 초점없는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나오는 그들을 보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이 있어야할 나이에 왜 저럴까’하는 불쌍한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 ‘십대교회’는 십대들만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장년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십대가 중심이 되고 장년들이 울타리를 쳐주는 교회이다. ©구굿닷컴 |
이후 김 목사는 10년 동안 ‘청소년’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곳은 어디라도 찾아다녔다. 예배인도자학교를 비롯해 큐티학교, 청소년지도자학교, 청소년영상매체 등등…
김 목사는 “‘청소년’이라는 말만 붙어있으면 쫓아 다녔다”며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단어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때로는 ‘젊은이들이 모인 곳에 웬 아줌마?’라는 의아한 눈초리도 있었지만, 김성애 목사는 “누가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지 않고, 10년간 독학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청소년 사역을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컸지만, 김성애 목사는 목회자가 될 생각을 해 본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목회자로 부르심에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희미하게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마음’이 그것이었다.
김 목사는 “옛날 같으면 뒷방에서 손자나 볼 나이에 왜 내게 이 사역을 맡기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며 “그러던 중 ‘네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내 양들을 간수해 줄 수 없겠니? 그게 단 한 명일지라도’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됐다”고 당시의 감동과 부르심을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동안 목사 안하겠다고 버텨온 게 부끄러워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55세 때부터 시작된 청소년에 대한 짝사랑이 10년 만인 2001년에 목사안수를 받자마자 십대교회를 설립한 것으로 이어지게 됐다.
꿈에 그리던 ‘쉼터버스’
김성애 목사는 목회를 시작한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청소년을 향한 열정과 꿈은 시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화제가 됐던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버스도 청소년들을 위한 수많은 꿈 중에 하나이다.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버스는 가출한 학생이 하룻밤 쉬었다가 집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든 것이다.
김성애 목사는 “처음 가출한 아이들은 부모가 무서워서 집에 가고 싶어도 못 들어간다”며 “이들이 상습적으로 가출하지 않도록 쉼터버스에서 하루 저녁 재워주고, 결과적으로는 이들을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역할까지 감당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오랫동안 김성애 목사의 마음에 품고 있던 이 꿈은 올해 초 두 사람의 동역자에게 전해지면서 열매를 맺게 됐다. 유스미션 대표 원베네딕트 선교사와 아들인 가수 김장훈씨가 바로 그들이다.
▲ 김성애 목사는 청소년들을 향한 꿈을 멈출 수 없다고 전했다. ©구굿닷컴 |
김 목사의 꿈을 듣고 같은 마음을 품게 된 원베네딕트 선교사는 유스미션 기도모임 때 이 비전을 청소년들에게 나눴고, 이를 위한 헌금 백만원을 준비하게 됐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청소년 캠프 때 특별헌금과 십대교회 헌금, 김장훈씨의 헌금이 모아져 이동버스가 마련됐다.
김 목사는 쉼터버스 사역이 사회사업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 중심에서 기도하면서 이끌어 갈 계획이지만, 표면적으로는 김장훈씨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사역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려면 김장훈씨가 직접 나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장훈 형제는 앞으로 전국각지마다 쉼터버스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며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대중가수로 이름을 얻게 한 이유에 대해 이러한 일을 감당하라고 그렇게 해주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아들을 ‘형제’라 부르며 동역하는 김성애 목사는 “엄마로서는 빵점일 수 있겠지만, 내가 아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한 가지라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부분은 숫자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는다”며, 하나님께 아들을 맡기면서도 아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황무지에서 귀한 열매 거두다
올해로 5년째 십대교회를 이끌고 있는 김성애 목사는 누구보다 청소년을 사랑한다고 자부하지만, 또한 이 길이 황무지 같은 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열망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망했던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성애 목사는 이제 조금씩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희망을 이야기 한다. 도무지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아이들이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뚜렷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변화들이다.
김성애 목사는 “4년 전부터 아이들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의 모든 사역에 대해 하나님 앞에 보상받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 김성애 목사는 평신도로 교사직분을 감당하면서, 청소년과 함께 꿈을 나누는 ‘공간’을 꿈꿨다. 그 꿈은 지금까지도 ‘모세의 떨기나무 불꽃처럼’ 불타고 있다. ©구굿닷컴 |
김 목사는 “북한 선교를 마음에 품고 북한학과에 들어가는 아이, 기필코 의사가 돼 오지로 나가 복음을 전하겠다는 아이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아무리 사랑을 퍼부어도 반응이 없고, 찔러도 미동조차 않던 아이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것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감격을 전했다.
청소년 사역, 징검다리 되어
김성애 목사는 소수일지라도 알곡을 줍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를 길러내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이러한 소망을 위해 자신은 기꺼이 징검다리가 될 각오가 되어 있다.
김 목사는 “도저히 청년사역을 할 수 없는 나이에 이 사역을 하는 것은 내가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라며 “청소년 사역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내 등을 밟고 건너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효과적인 청소년 사역을 위해서 김 목사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청소년들이 마음껏 자기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청소년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김 목사는 “전국에 있는 청소년들이 자신들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맘껏 본인들의 생각과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청소년들끼리 모여 대화를 나눌 때 자기 속에 있는 꿈이 현실로 자라나는데, 그러한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이 꿈에 대해 “십대교회도 쉼터버스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꿈꾸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면서 “꿈을 꾸며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에게는 그분의 대안이 있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